“김병현과 나 같은 해외파가 ‘야구 선순환’ 만들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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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19면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미국 애리조나 투손. 한화 선수 속에 박찬호(39)가 있다. 똑같은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섞여 있으니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를 멀리서 구분하기 어렵다.

애리조나 캠프서 만난 박찬호

투손에서 자동차로 3시간쯤 떨어진 서프라이즈에는 넥센 히어로즈 캠프가 있다. 박찬호 다음으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투수 김병현(33)이 28일 넥센 훈련에 합류했다. 메이저리그 9년 통산 54승 86세이브를 올린 투수가 국내 프로야구 팀 가운데 재정이 가장 약한 팀과 계약했다.

박찬호는 “유학생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이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와 국내 산업을 일으켰던 것처럼 야구도 마찬가지다. 야구 발전에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18년 만에 돌아온 의미, 또 김병현을 비롯한 후배들 복귀가 일으킬 파급효과에 대해 힘주어 설명했다.

공만 빨랐던 한양대 2학년생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 3년 후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냈다. 박찬호는 한국야구가 메이저리그에 ‘수출’한 첫 상품이었다. 최고의 명예와 인기, 부를 누렸다. 그러나 그에겐 자부심과 함께 약간의 피해의식도 있었다. 박찬호가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뛰는 것을 ‘자원유출’로 보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1999년 10월 귀국했을 때 자신의 팬이 던진 계란을 맞았다. 팬은 “박찬호는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것을 지극히 개인적인 해프닝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해외파 선수들이 활약할수록 국내 리그는 위축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에는 ‘1999년 이후 해외 진출한 선수들이 국내 복귀하려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생겼다. 미국으로 건너가면 복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미국 진출을 막는다는 명목이었다.

박찬호는 “선수들이 해외로 나갈 때 뭐라고 했는가. 프로야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지금 보라. 국내에 남은 선수들이 더 빨리 성장해 프로야구가 경쟁력을 갖게 됐다. 그리고 해외파 선수들이 돌아오면서 더 풍요로워졌다. 이게 야구의 선순환”이라고 강조했다. 박찬호의 시각으로는 어린 나이에 해외 진출한 선수들은 ‘수출 역군’이다. 그들이 익힌 선진야구는 한국야구의 자산으로 다시 뿌리내리고 있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수십 명의 유망주가 미국으로 떠났고, 국내에서 9년 이상을 뛰고 프리에이전트(FA)가 된 선수들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최고의 인기와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프로야구가 무너지지 않았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한국야구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확보했다.

프로야구의 첫 개방정책은 1998년 외국인 선수 도입이었다. 국내 선수들의 밥그릇이 줄어든다는 내부 비판도 있었지만 선진 야구를 익힌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배우고 경쟁하며 필요한 것을 빼앗았다. 처음엔 당해낼 수 없을 것 같더니 10년쯤 지난 후부터는 어지간한 외국인 선수는 국내에서 버텨내지 못한다.

2007년 열린 해외파 특별지명 회의가 두 번째 개방이었다. 미국에 간 선수들을 묶은 사슬을 일시 해제해 각 구단들은 해외파 선수들을 특별지명하고 계약했다. KIA 최희섭(33), 롯데 송승준(32) 그리고 최근 김병현이 이렇게 돌아온 경우다.

지난해 말에는 ‘박찬호 특별법’이 KBO 이사회를 통과했다. 1998년 이전 미국 진출을 했던 탓에 박찬호가 국내로 돌아올 방법은 신인 1차 지명을 받은 뒤 신인 계약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KBO 이사회는 국위선양을 했고, 마흔 살을 앞둔 박찬호가 절차 없이 한화에 입단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해 일본 오릭스에서 220만 달러(약 25억원)를 받았던 박찬호는 한화와 프로야구 최저액(2400만원)에 2012년 연봉계약을 한 뒤 이마저도 기부했다. ‘야구의 선순환’을 증명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팀 후배 류현진(26)에게 당부했다. “최고 무대에 도전해라. 미국 진출에 만족하지 말고 10년 이상 던질 수 있을 만큼 지금부터 준비해라. 거기서 최고의 야구 기술을 배우고, 산업으로서 야구도 경험하라. 그리고 훌륭한 자산을 갖고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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