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앙일보

입력

〈피가로의 결혼〉은 훌륭한 오페라가 되기 위한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오페라 부파(코믹 오페라)의 피상적인 가벼움을 충분히 커버해주는 음악적 깊이에다 나무랄 데 없는 극적 구성력, 귀족사회를 통렬히 풍자하는 튼실한 내용,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아리아….

이 작품은 코미디의 연속이다. 백작부인의 애인(백작의 시종)케루비노가 탁자 밑에서 갑자기 나타나고 케루비노가 숨어 있는 게 분명한 탈의실에서 수잔나가 문을 열고 나온다.

또 정원사가 부서진 카네이션 화분을 들고 나타나질 않나, 피가로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부모를 다시 찾지 않나.

예술의전당의 '2000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품으로 16일 막이 오르는 〈피가로의 결혼〉은 국립오페라단이 예술의전당에 둥지를 튼 후 처음 이 극장에서 선보이는 작품인데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이 상연되는 것도 처음이라 더 주목된다.

개막에 앞서 14일에 열린 드레스리허설에서 보여준 신경욱의 연출은 교과서적이라 할 만하다.

또 거실·침실·정원 등 1막부터 4막까지 같은 무대 구조물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꾸민 무대장치로 빠른 무대전환과 작품의 통일성을 가져온 것이나 18세기 궁정 분위기에 충실한 의상(데이비드 히긴스)은 이런 연출고 잘 어울렸다.

특히 무대의상은 국내 무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완성도와 예술성으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하지만 시종일관 무대 전체를 환하게 비춘 조명(앨런 화이트)는 드라마의 깊이를 부각시키는데 미흡했다.

베를린슈타츠오퍼 주역가수로 활동 중인 베이스 연광철(피가로 역)은 명쾌한 발음, 활기 넘치는 코믹 연기로 무대에 활력을 불어넣어 관객의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또 다소 호흡이 짧은 게 흠이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백작부인 역을 잘 소화해낸 소프라노 김인혜, 남자와 여자 역을 오가는 케루비노 역의 소프라노 추희명의 연기와 탄탄한 발성이 돋보였다.

제3막에서 백작부인과 수잔나(소프라노 이은순)가 부르는 '편지의 2중창'은 설레는 여자의 마음을 잘 표현해냈다.

하지만 중창에서 치밀한 앙상블과 팀웍이 아쉬웠고 모차르트 가수의 기근을 새삼 실감했다.

공연은 16일·19일·10월6일·8일·1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계속된다.

베이스 강순원(피가로)·소프라노 배기남(수잔나)·바리톤 김범진(백작)·소프라노 신지화(백작부인)·소프라노 김자희(케루비노)등이 더블 캐스팅으로 출연한다.

02-586-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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