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10만원 저축 3년 만기시 2016만원 요술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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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3시 경기도 성남시 성남동의 한 아파트단지 앞 피부관리실. 피부관리사 오미숙(47·사진)씨가 능숙하게 손님의 얼굴에 크림을 바르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동네에서 실력 좋기로 소문난 오씨는 지난해 봄 지금의 직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월급도 이전보다 올라 150만원을 받는다. 자녀 셋을 둔 싱글맘 오씨는 지난해 8월 6년간의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청산했다. 그는 “이제는 나도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수급자 때 받던 지원이 중단됐지만 희망이 있으니 괜찮다”며 활짝 웃었다. 수급자에서 벗어난 지 6개월도 채 안 된 오씨의 자신감 비결은 뭘까.

 8년 전만 해도 오씨는 하루도 웃을 날이 없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의욕이 없었다. 모든 채무를 짊어진 오씨에게 빚 독촉이 쏟아졌다. 수천만원의 빚은 이혼 후 개인파산 절차를 밟은 뒤에야 겨우 털어낼 수 있었다. 사라진 것은 빚뿐만이 아니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릴 돈도 희망도 함께 없어졌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데도 은행에선 돈을 빌릴 수 없었다. 하루 한 끼만 먹고 12시간씩 식당 설거지를 해도 한 달 월급은 70만원 남짓. 결국 오씨는 2005년 7월 ‘공인 빈곤층’인 기초수급자가 됐다. 교육 ·의료 ·주거비가 지원되니 부담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불편해져 갔다. 그는 “내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자식들도 똑같은 삶을 반복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며 “아이들에게 수급자 딱지를 대물림 해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술을 꽉 물었다. 2010년 복지부의 취업지원 프로그램인 희망리본(Re-born)에 참여해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자마자 피부관리숍 취업에 성공했다.

 오씨에게 더 큰 꿈이 생겼다. 올해 전문대 뷰티산업 관련 학과에 입학하는 둘째 딸과 함께 피부관리숍을 열겠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꿈을 키울 수 있는 건 희망키움통장 덕분”이라고 말했다. 2010년 10월 성남만남자활센터 사회복지사 김명주씨가 오씨에게 권유했다. 처음엔 오씨도 “빠듯한 살림에 무슨 저축이냐”며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키움통장을 만든 이후 일하는 게 더 신난다”고 말한다. 본인이 저축한 금액 이상으로 돈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씨도 매달 10만원을 희망키움통장에 저축하니 민간지원금(10만원)과 정부 근로소득장려금(36만2300원)이 추가로 적립됐다. 내년 9월 통장을 해지하면 오씨가 낸 돈의 4.6배가 추가로 적립돼 총 2016만원을 받게 된다. 꿈이 이뤄질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올해 희망키움통장 가입자를 3000가구 추가 모집하기로 했다. 복지부 고형우 자립지원과장은 “기초수급자들이 일을 통해 자립하겠다는 의지를 높일 수 있게 희망키움통장 가입자를 계속 늘리겠다”고 말했다. 근로 의욕을 높여 기초수급자들의 자립을 촉진해야 한다는 중앙일보의 지적에 정부가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기초수급자 1만5000가구가 이 통장에 가입해 3000가구가 수급자에서 탈출했다.

◆희망키움통장=기초수급자의 근로 의욕을 북돋우고, 수급자에서 벗어난 뒤 다시 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 복지부가 2010년 도입한 제도. 근로소득이 있는 수급자가 통장에 저축한 액수만큼 민간 지원금이 적립되고, 정부가 근로소득장려금을 덧붙여 준다. 가입기간(3년) 동안 본인 저축액의 최대 7배까지 적립할 수 있다. 통장 가입기간 중 수급자에서 나와도 소득이 최저생계비 150% 이하이면 추가지원금을 주며, 의료·교육급여도 2년간 계속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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