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2명, 명동서 5시간 끌려다니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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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기간 중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여자 중학생 2명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 중·고교 남학생 3명과 여학생 3명이 이들을 5시간 넘게 명동 주변 공사장과 패스트푸드점 등으로 끌고 다녔지만 이들을 제지한 이는 없었다. 경찰 조사 내용과 피해 학생 부모 증언, 가해 학생의 말 등을 종합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사건이 시작된 것은 지난 21일 오후 9시40분쯤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였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A양(15) 등 2명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고 지내던 인천의 한 중학교 3학년 B양(16)과 만났다. 그런데 B양 옆에는 남학생 3명과 여학생 2명이 서 있었다. 이들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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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양 등 6명은 A양 등을 다짜고짜 10분 거리에 있는 명동 재개발지역 공사 현장으로 끌고 갔다. B양 등은 공사장에 있던 쇠파이프로 A양 등의 엉덩이를 때리고 발로 어깨를 쳤다. ‘퍽’ ‘퍽’ 소리가 났지만 인근 상가의 음악소리에 묻혔다.

가해 학생들은 자정이 지나자 피해 학생들을 다시 명동역 5번 출구 앞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끌고 갔다. 24시간 운영되는 곳이었다. A양 등의 눈 주변에 피멍이 들었지만 거리를 지나는 어른들은 이들 옆을 스쳐 갔다. A양 등을 에워싸고 우르르 몰려가는 B양 일행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간 학생들은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1층 계산대에 있었던 한 직원은 “그때 2층에도 손님들이 있었는데 폭행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을 2층 화장실로 끌고 가 옷을 벗겼다. 2층에는 매장 직원이 없었다. 남학생들은 탁자에 앉아 망을 봤다. A양 등은 22일 오전 3시가 돼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들은 두려움에 떨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렸다. 부모들이 A양 등과 함께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찾아간 것은 같은 날 오후 7시쯤이었다.

 25일 경찰서를 다시 찾은 A양 아버지(45)는 기자에게 “가해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우산으로 딸의 주요 부위를 찌르기도 했다”며 “딸을 산부인과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딸의 허벅지에 쇠파이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정도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원했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폭행으로 처리하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동성 사이에는 성추행이 인정되기가 쉽지 않다”며 “가해 학생들을 모두 조사한 뒤 처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해 학생인 B양은 기자와 만나 “그 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라고 욕을 하며 놀려서 때린 것”이라며 “당시 서로 화해하고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청소년 보호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명지전문대 오승근(교육복지학) 교수는 “교내 폭력에 대해서만 대책이 집중될 경우 학교 밖 폭력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패스트푸드점 2층 화장실처럼 범행 장소로 쓰일 수 있는 곳에는 긴급 비상 버튼을 설치하고 직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 A양 아버지는 “명동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폭행과 추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방관한 어른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민상·이유정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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