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해외진출, 20년 전 삼성·현대차의 실패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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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장세진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오른쪽 둘째)가 26일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와 하나금융 경영연구소 공동 주최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 금융사의 해외 진출’ 금융포럼에서 금융산업의 해외 진출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호 하나은행 부행장, 최공필 금융연구원 박사,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장 교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노진호 연구위원. [김도훈 기자]

“내수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금융회사들은 해외 진출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국 금융산업의 국제화 수준은 국내 제조업체들의 20년 전 상황과 비슷하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2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주제로 개최한 금융포럼에서 나온 지적이다. 장세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글로벌 금융사들이 이미 한국에 진출한 상황에서 국내 금융사가 계속 ‘우물 안 개구리’로 남아 있으면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내수 시장마저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기업도 국제화 초기 단계인 1980년대 말~90년대 초 여러 차례 실패를 했다”며 “하지만 이런 실패가 한국 제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며 “해외 진출을 위해선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거나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 차이가 적은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점진적 국제화가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국 금융사들의 해외 전략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자신 있는 업무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캐나다·스페인 등을 돌며 은행 간부들을 면담한 결과다. 노 위원은 “이들 은행은 문화적 유대감이 있는 지역에만 진출하거나 자신 없는 분야는 과감히 포기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은행도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무조건 현지에 가서 답을 구해보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며 “국내에서 핵심역량을 쌓은 뒤 이를 기반으로 진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국내 금융산업의 해외진출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국제화가 부진한 원인과 해법에 대해선 견해가 조금씩 달랐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박사는 “지금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요 금융사의 경영진 구성이 영향 받는 구조에선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외진출에는 장기적인 접근이 절대 필요한데 경영진이 이렇게 자주 바뀌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병호 하나은행 부행장은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는 국내 금융사의 평가방식이 장기적이고 일관된 전략이 필요한 해외진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도 “은행의 평가는 단기도 아닌 초단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장기 전략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어느 나라, 어떤 분야에 진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지동현 KB국민카드 부사장은 “국내 금융사가 해외에서 기업금융을 잘하기는 쉽지 않다”며 “역시 어렵긴 하지만 소매금융이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정세 미소금융중앙재단 단장은 “아프리카 등의 개도국에선 마이크로 파이낸싱(저소득층에 대한 소액 신용대출)이 금융업의 이미지 제고와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런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승연 명지대 교수는 “해외진출 경험을 매뉴얼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 명단

▶강문성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부소장 ▶권영준 경희대 교수 ▶김광기 중앙일보 선임기자 ▶김종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영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박종규 국회 예산정책처 박사 ▶박준 서울대 교수 ▶원승연 명지대 교수 ▶이상제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이정세 미소금융중앙재단 단장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박사 ▶전선애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동현 KB국민카드 부사장 ▶최범수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최흥식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홍정훈 국민대 교수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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