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미 빈민가 대안학교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 이슈는 세금감면이나 국가미사일방어체제가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다고 응답한 주제는 바로 ‘교육’이다.

공화·민주 양당은 얼마전 끝난 전당대회에서 교육에 관한 자기 당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선 교사와 학부모를 연단에 등장시켜 각기 자기 당의 교육정책이 우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빈민가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린 학교의 성공사례를 발표해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각기 전당대회 직후 벌인 유세전에서 자신들의 교육정책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운집한 유권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두 후보는 서로 경쟁적으로 교육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교육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표로 연결시키는데 안간힘을 다했다.

미국에서 교육문제를 얘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이 공립학교의 개선이다.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기존 정부 주도 공립학교체제로는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없다며 학부모·학생들에게 학교의 선택권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바로 바우처(Voucher)
제도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바우처제도란 공립학교를 원치 않는 학생들에게 공립학교에 지원되는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쿠퐁식으로 주어 자신이 원하는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반해 고어 후보는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잡다한 형태의 사립학교에 국가의 교육예산을 낭비할 수 없다며, 대신 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 전체 공립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학업성적의 향상을 꾀하는 상책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바우처제도는 州별로 시행범위가 다르고 학교마다 성패가 엇갈려 여전히 찬반 양론이 팽팽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선보인 뉴욕·휴스턴의 빈민가 대안(代案)
학교의 성공사례는 바우처제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모아 주목된다.

KIPP(‘Knowledge is Power’Program; ‘지식은 힘’ 프로그램)
란 이름의 이 대안학교는 5년전 아이비 리그 명문대 출신의 두 헌신적인 젊은 교사에 의해 설립됐다.

KIPP는 미국 교육의 불모지로 간주되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몰려사는 대도시 빈민가에서 도저히 학업성취가 기대되지 않는 학생들을 받아 모두 우등생으로 졸업시키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 비결은 한 사람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교사들의 투철한 신념과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학생들로부터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열의를 이끌어낸데 있다.

이 학교는 우선 같은 학년의 다른 학교에 비해 평균 70%가 많은 수업시간을 요구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늘린다는,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엄격히 지킨 것이다. 방과후에는 2시간씩 집에서 숙제시간을 갖는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집에서 숙제를 했는지를 매일 체크해 서명하고 교사는 이를 매일 확인한다. 모든 교사들은 이동전화를 휴대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학생들의 숙제를 도울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학기 초에는 학생과 학부모·교사들이 모두 최선을 다한다는 각서에 서명한다.

강제성이나 구속력이 없는 상징적인 문서지만 이 학교에선 불문율로 통한다.

또 한가지 이 학교의 특징은 학생과 교사 모두 각자의 성과에 대해 엄격한 보상체계를 적용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잘잘못이 세밀히 기록된 카드에 따라 1주일 단위로 학교 구내매점 이용권을 받는다. 학부모들은 학생이 잘못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성취도에 따라 보너스를 달리 받는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지난 2년간 미국 전역의 최우수 사립고에 진학해 모두 5백만 달러의 장학금을 받았고, 진학한 후에도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IPP의 성공사례가 알려지면서 이 학교의 교육방식을 모방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급기야 KIPP란 브랜드를 사용하는 전국 사립학교 재단까지 생겼다.

의류체인점 GAP의 창업자 도널드 피셔와 도리스 피셔는 1천5백만 달러를 들여 KIPP 전국 체인을 설립했다. 미국내 가장 힘든 곳에서 성공한 교육방식이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없진 않지만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열망과 이미 입증된 성과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바우처제도에 대한 결론은 이번 선거가 끝나 봐야 알겠지만 KIPP와 같은 대안학교의 성공은 기존 공립학교에도 큰 자극제가 되고 있다. 각급 공립학교에서도 교사에 대한 성과급 도입과 학교별 차등지원제의 도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교육열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에서 KIPP식 학교가 생긴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김종수,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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