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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사부일체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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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내셔널팀장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가카새키’라는 저속한 표현으로 대통령을 공격하는 시대다. ‘뼛속까지 친미’라는 저급한 표현도 대통령을 겨냥했다. 교사들의 수난도 대통령 못지않다. 어린 제자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욕설을 듣는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 수업 중 게임을 한다는 이유로 휴대전화 사용을 제지 당한 고교생은 여교사의 가슴을 향해 날카로운 흉기를 겨누었다. 아버지의 위상도 말이 아니다. 요즘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3대 조건이 필요한데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한다. 세간의 우스갯소리지만 아버지는 없어도 그만인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주춧돌이다. 예부터 이들의 은혜는 너무 크기 때문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다. 나라를 이끄는 임금의 말은 아버지의 말과 같고 스승은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될 존경의 대상이며, 아버지는 집안일의 최종 종결자였다. 1인당 국민소득 500달러를 막 넘었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아버지의 권위를 잘 기억하고 있다. 언제나 당당하고 저절로 권위가 있었다. 군사부일체는 의미 그대로 아버지는 집안의 임금, 스승은 학교의 임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新)군사부일체 시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세태를 보면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탈당 압력을 받고 있다. 5년 단임제 이후 예외 없는 레임덕 현상이라지만 집안인 여당 내부에서도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명예퇴직 러시가 한창이다. 교권 추락으로 학생을 가르칠 의욕과 학교에 대한 애정이 식은 탓이다. 상당수 교사는 일상화된 왕따와 학교폭력을 방치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교사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는 바람에 학생의 인성(人性)을 지도하고 학교 규율을 바로 세울 권한이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교사가 애정 어린 손길로 지도하면 될 아이들도 결국 그런 소중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약한 학생이 어려움에 처해도 교사는 더 이상 보호해 주지 못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존경 받을 기회도 자격도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집에서는 아들·딸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새 회사에서 프로 운동선수 취급을 받는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최고의 일꾼이 되지 못하면 언제든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딱한 사연을 늘어놓으니 그야말로 신군사부일체 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들이 계속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금 더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 최고의 해법은 소통이다. 대통령은 국민과, 교사는 학생과, 아버지는 자녀와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이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는 것도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