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刀頭(舌+添삼수변 빼기)血 도두첨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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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 말기 장사를 통해 거부(巨富)를 이뤘던 호설암(胡雪岩·1823~1885년)이란 인물이 있다. 관(官)과 밀착한 비즈니스를 했다는 의미로 ‘홍정상인(紅頂商人)’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소규모 은행인 전장(錢庄)을 운영하던 그에게 사업 기회가 찾아왔다. ‘태평천국의 난’이 발발한 것이다. 그는 관군과 태평천국군 진영을 오가며 군량미·군화·창(槍) 등 전쟁 물자를 팔았다.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 친구가 그에게 “이토록 위험이 높은 사업을 하다가 망하면 어쩌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호설암의 답은 이랬다. “상인은 모름지기 이익(利)를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수지만 맞으면 뭐든지 한다. 돈이 된다면 칼에 묻은 피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刀頭<8214>血).” 요즘 표현으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에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라는 뜻의 ‘도두첨혈(刀頭<8214>血)’이라는 말이 나왔다. 요즘에도 성공한 기업인들 대부분은 한두 번쯤 ‘칼 끝의 피를 핥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 말은 원래 군사 전략에서 나왔다. 옛 병서에 “싸움을 진두 지휘하는 군사(軍師)는 모름지기 ‘칼 끝의 피를 마시고, 말 안장에서 잠을 자야 한다(渴飮刀頭血,睡臥馬鞍橋)’”고 했다. 전장에 나서면 어떠한 어려움도 피하지 말고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 비즈니스와 전투는 다르지 않았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며 사업을 일으키는 냉혹한 사업가였던 호설암의 어록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경상(經商·비즈니스)을 하는 자의 가장 큰 명예는 타인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의 최고 은덕은 ‘너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업인의 가장 큰 덕목은 일자리 창출인 셈이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올해 채용 규모를 대폭 늘리겠다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고졸 출신 사무·개발직을 뽑기로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드러지고 있는 대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칼 끝의 피를 핥는 정신으로 사업을 하고, 일자리 창출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호설암 정신’이 이 땅에도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 사회의 건강을 되살릴 방책이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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