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일어선다, 공부하는 홍명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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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서정진이 21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킹스컵 국제축구대회 노르웨이와의 최종전에서 후반 14분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한국은 태국·덴마크·노르웨이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2승1무를 거두며 6골을 넣고 1골만을 내줬다. [방콕=연합뉴스]
킹스컵 우승을 이끈 홍명보 감독이 22일 인천공항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43) 감독이 이끄는 런던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기분 좋은 상승세 속에 임진년 새해를 맞이했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막을 내린 태국 킹스컵 국제축구대회에서 종합전적 2승1무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였다.

 한국은 개최국 태국과의 개막전에서 3-1로 승리한 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위 덴마크와 0-0으로 비겼고, FIFA 랭킹 24위 노르웨이를 3-0으로 완파했다. 세 팀 모두 A대표였고, 한국은 전원이 23세 이하 선수였던 만큼 우승컵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런던 올림픽 본선 진출 및 사상 첫 메달 획득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올림픽팀의 상승세는 ‘선장’ 홍명보 감독의 성장 그래프와 궤를 같이한다. 냉철하고 강인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홍 감독이지만, 초보 지도자 시절에는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2010년 12월에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좋은 예다. 우리 대표팀은 아랍에미리트와의 준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0-1로 패했다. 당시 홍 감독은 승부차기에 대비하고자 연장 후반에 골키퍼를 김승규(울산)에서 이범영(부산)으로 바꿨다가 곧바로 결승골을 내줬다. 교체 투입을 앞둔 이범영이 몸을 푸는 모습을 본 선수들은 ‘아, 이제 승부차기로 가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해 골을 넣겠다는 의지와 긴장감이 허물어져 버렸다.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기적 같은 4-3 역전승으로 끝난 이란과의 3, 4위전 또한 비슷했다. 후반 30분까지 1-3으로 끌려가자 홍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하는 대신 벤치에 몸을 기댄 채 패배를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처절한 실패를 맛본 홍 감독이 주저앉지 않은 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꾸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오자마자 최상위 지도자 과정인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 라이선스를 신청해 이론 공부에 전념했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면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A대표팀 사령탑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홍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굳게 지켰다. 조광래 전 감독 경질 직후 후임 사령탑 0순위로 거론됐지만 그는 시종일관 고사했다. 당시 ‘A대표팀 감독직이 욕심나지 않느냐’는 미디어의 질문에 “나는 아직 A대표팀을 이끌기엔 부족함이 많다”며 “사실 조광래 감독님이 A대표팀 사령탑에 오르기 전에 축구협회가 나에게 먼저 감독직을 제안했었다. 감투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그때 수락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런던 올림픽 본선행을 준비하는 홍 감독은 흔들림이 없다. 그의 선수 선발 기준은 ‘공평무사(公平無私)’라는 말로 요약된다. 철저히 ‘실력’과 ‘희생정신’ 두 가지만으로 선수를 뽑는다. 소속팀, 인기, 팀 내 역할 등은 모두 배제한다. 한때 홍 감독의 선발 시스템을 ‘주전급 길들이기’로 오해했던 선수들도 이제는 스승의 의중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관련해 홍 감독은 “한때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제자들이 올곧게 성장하는 것이 곧 지도자인 나의 진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과 태국 킹스컵 우승으로 자신감을 충전한 올림픽대표팀은 오늘 재소집해 카타르로 향한다. 2월 5일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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