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 가치투자보다 역발상 투자 절실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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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21면

요즘 개인투자자들은 다양한 투자 노하우를 공유하게 됐다. 과거에는 전문 투자자들만 알던 투자법을 주식 관련 홈페이지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들어봤고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투자법은 이른바 ‘가치투자’와 ‘역발상 투자’일 것이다. 둘 다 좋은 말이다. 이 두 가지 중 작금의 주식시황에 잘 맞는 투자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역발상 투자라고 본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가치투자는 가장 고전적인 정석 기업투자 방식이다. 가치투자의 기본은 기업의 재무제표다. 기업 성적표에 나타난 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석해 흙 속의 진주를 캐내는 작업이다. 약점이라면 기업을 둘러싼 거시환경, 가령 ▶환율·금리와 금융시스템 ▶정치·사회적 이슈 ▶지정학적 문제 ▶국제사회의 역학이나 전쟁 등과 같은 크고 외생적인 이슈가 터질 때 힘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역발상 투자가 가치투자의 대척점에 있는 건 아니다. 상호 보완관계일 것이다. 분명한 건 가치투자보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혼이 자유롭다. 상황에 따라 가치에 근거하기도 하고 이른바 수급(수요·공급)에 근거하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다수 투자자의 쏠림을 역으로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투자전략이다. 과도한 편향은 결국 평균가격이라는 중심으로 회귀한다는 원리를 되새기는 역발상 투자인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뒤안길에 꽃길이 있다’라는 증시 격언이 있다. 역발상 투자를 상징하는 말이다. 워런 버핏이 그랬다. 초년병 투자자 시절, 월가에서 분석보고서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종목 중에서 투자대상을 발굴했다. 주식시장의 구루(guru)로 불리거나, 주식으로 거부를 일군 이의 상당수는 역발상에 착안했다.

그렇다면 현재 주식시장의 환경은 어떤가. 대외적 거시환경에 의해 자본시장이 크게 좌우되고 있고 수급과 심리의 쏠림현상이 지난해 이후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치투자 리듬은 어색하다. 발상을 틀어볼 시점이다. 특히 개별 기업이나 업종별 실적 이슈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가 반영되고 대외적인 매크로 변수들에 의해 주가가 결정되는 형국이다.

구체적으로 역발상 투자 아이디어 몇 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긴 호흡으로 시장을 바라보면 역발상은 우선 자산배분 측면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현재 평균 3%대 초반의 금리는 현 주식시장의 미래 기대수익률인 11%에 비해 8%포인트 낮다. 이는 은행에 3년 반 예금을 묻어둬야 주식의 1년치 평균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지난 2007년 이후 주식시장의 고점이 꺾이고 펀드에서 자금이 이탈하면서 저축성 예금은 336조원 증가했다. 금융자산 내에서 안전자산 쏠림현상이 8년여 만에 가장 심한 상황이다. 더구나 지난해 이후 1년 반 가까이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다. 이처럼 금융자산의 쏠림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순차적인 역발상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일단 위험자산 중 부동산은 힘을 못 쓴다. 그렇다면 장기투자의 성과를 이미 검증받은 적립식 주식투자를 우선 고려할 만하다.

둘째 역발상. 지난해 증시를 뒤덮은 과도한 경기 방어주 쏠림현상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평가절하가 정상 수준을 향해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8~9월의 급락 이후 경기민감형 주식 중 상당수는 자기 업황에서의 변동성 노출보다 심하게 과도한 저평가를 받았다. 자산가치가 청산가치의 절반이거나 이보다 조금 높은 수준(주가순자산비율 0.5~0.7배)에 있는 업종 대표주들이 의외로 많다. 이 중 자기자본이익률이 10~15%대인 기업들은 이대로 2~3년만 더 지나면 80% 바겐세일을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역발상은 과열된 테마주로부터 멀어지는 ‘거꾸로 투자’다. 지난해 하반기 과도한 테마 양산과 중소형주로의 탈출이 장기적 현상일 가능성은 작다. 훨씬 안정적 수익을 향유하는 우량 대형주들이 폭락한 채 널려 있는 게 아닌지, 쏠림현상의 반대편을 생각해 볼 시기다.

해외라는 역발상도 있다. 물론 위험성은 크다. 미국·일본·중국·유럽에서 기술과 시장 경쟁력이 높은 기업들이 불가피한 시장 충격의 파편에 상처받고 있다. 중국 증시를 예로 들면 아주 낮은 수준의 밸류에이션에서 거래되는 중국 내수 1, 2위의 기업이 많아졌다. 발상을 전환하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역발상 투자는 결코 편한 길은 아니다.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의 고충은 그렇게 해본 사람만이 안다. 역발상을 하더라도 시장상황과 수급에 대한 감각, 기업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 등을 두루 갖춰야 성공확률이 높다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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