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흐름 거스른 애절한 사랑 〈시월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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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애〉 (時越愛.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란 의미의 조어)는 장면 장면이 아름다운 영화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튼실하지 못해 아쉬운 한숨을 짓게 한다.

마치 예쁘게 꾸민 파티장에 갔으나 먹을 것이 없는 것 같다.

홍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으로〈그대안의 블루〉(1992년)〈네온속으로 노을지다〉 (94년)를 연출한 이현승 감독의 감각적 영상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여기에〈유령〉〈반칙왕〉에서 카메라를 잡은 홍경표 촬영감독, 올해 대종상을 받은 서정달 조명감독이 가세해 시사회 전부터 "그림은 보장한다" 는 말이 충무로를 떠돌았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서해 석모도를 배경으로 한 세트장을 카메라가 비출 때마다 펼쳐지는 색깔의 묘한 조화는 깔끔하고 낭만적이다.

성우 지망생 은주(전지현)와 건축학도 성현(이정재)이 각자의 공간에서 스파게티를 만드는 모습이 교차할 때, 각자 제주도 바닷가를 찾아 생각에 잠겨 걷는 화면은 혹시 색이 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 정도로 깨끗하고 은은하다.

〈시월애〉는 2년을 뛰어넘어 전달되는 편지로 두 남녀가 교감을 쌓아가는 '기적' 에 관한 이야기다.

갯벌에 덩그렇게 선 외딴집 '일마레' (이탈리아어로 바다의 뜻)로 이사온 성현은 전에 이 집에 살았다는 은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받은 것은 98년 1월이지만 우체국 소인은 2000년 1월이 찍혀 있다.

지은 지 한달밖에 되지 않는 집에 날아든 편지에 의문을 품지만 계속되는 편지를 통해 둘은 오해를 풀어간다. 현실적 공간 속에서 일마레 앞 우체통은 시공을 초월해 두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한 사랑은 이미〈동감〉에서 익숙해 있고, 편지를 매개로 애틋함을 키워가는 것 역시 일본 영화〈러브 레터〉에서 유용하게 쓴 소재다.

그러나 영화에 환상적 요소를 부여하는 타임머신 우체통이 전파를 통해 20년을 뛰어넘는〈동감〉의 무선 햄보다 팬터지적 설득력이 떨어지고 편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러브 레터〉보다 매끄럽지 못하다.

만남과 부대낌 없이 우체통에 의지한 채 지탱하는 남녀의 사랑이 쓸쓸하면서도 자꾸 어긋나 보이고 죽은 성현을 살리기 위해 은주가 과거로 편지를 보낸다는 설정은 너무 해피엔드를 의식한 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 전지현과 이정재는 연기보다 영화의 분위기 만들기에 주력한다.

〈화이트 발렌타인〉이후 두번째 영화인 전지현은 CF에서처럼 파격적인 매력을 분출하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 다양한 표정으로 역을 매끄럽게 소화한다.

〈태양은 없다〉에서만큼 역동적인 연기는 없지만 분위기를 세심하게 좇는 이정재 역시 영화를 받치는 힘이 된다.

스토리 라인을 중시하는 세대들의 기대엔 다소 못 미친다. 하지만 전지현의 캐스팅을 비롯해 감각을 중요시하는 신세대의 취향에 맞는 요소들을 꽤 갖추고 있다.

Note

"캔 맥주 하나 마신 후 몽롱한 상태에서 한참을 마구 달려가 바이킹과 청룡열차를 타라. " 은주(전지현)가 추천하는 스트레스 해소법. 혹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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