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법관 "가족 잃고 범죄자 된 20대 여성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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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표한 ‘2011 법관평가’에서 최우수법관으로 선정된 이창형 서울중앙지법 형사4부 부장판사가 법정에 서 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정언행연구소 위원장을 맡아 판사들의 재판 진행을 모니터링하고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젊었을 땐 기록에 따라 법대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쉬움이 남더군요. 기록이 보여주지 않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상황을 더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본지 1월 18일자 17면>

 서울중앙지법 형사4부 이창형(50·사법연수원 19기) 부장판사. 그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7일 발표한 ‘2011 법관평가’ 결과에서 최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자신을 평가한 변호사 8명 모두에게서 100점을 받은 것이다. 그가 최우수 법관으로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18일 이 부장판사를 만나 비결을 물어봤다. 그는 “다른 판사분들과 다른 게 없을 텐데…”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변호사들께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쓴 점을 인정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재판할 때 원칙이 있다면.

 “사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기록을 덮고 생각해 보려고 했다. 피해자와 피고인의 범죄 당시 상황이나 성장과정 등을 두루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판사는 재판 기록을 보는 직업 아닌가.

 “내가 30대일 때는 기록을 덮고 생각해 보자,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재판을 하면서 오히려 기록이 보여주지 않는 상황을 더 살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1997년 논산지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무거운 형량을 선고해 ‘엄한 판사’라고 불렸다. 변호사들이 ‘공주교도소 화장실에 판사님 욕이 잔뜩 쓰여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런 얘기를 접하면서 ‘소송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봐야 했던 게 아닌가’ ‘내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 부장판사는 가족을 모두 잃고 범죄자가 된 젊은 여성 A씨 사건이 기억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피고인석에 선 A씨는 절도 전과 3범이었다. 이 부장판사는 “A씨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가출하고 고교 시절 아버지와 할머니를 한날 한시에 잃은 여성”이라며 “죄를 지은 것은 잘못이지만 가슴 깊이 반성하는 그에게만 잘못을 물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그는 “누범이라 실형선고가 불가피하지만 반드시 갱생할 수 있다고 본다. 정 힘들면 나를 찾아오라”며 피고인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 부장판사는 2G 휴대전화를 7년째 사용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낯설고 어려워서 아직 시도를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판결을 내려주는 것이 진정한 판사들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 판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많이 듣고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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