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등장 '여장남자'에 "도대체 누구냐" 中들썩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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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난 칭다오의 집에 있는 리우 페이린.[사진=상하이스트 웹사이트]

양 갈래로 늘어뜨린 긴 머리. 곳곳엔 리본과 꽃 장식으로 가득하다. 얼굴은 흰색과 분홍색의 분가루 범벅이다. 여성이 했다 해도 범상치 않은 풍모를 한 사람. 그는 사실 50대 중반의 남성이다. 특이한 외모를 갖춘 이 남성의 사연이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중국 영문 웹사이트 상하이스트(Shanghaiist)가 17일 보도했다.

남성이 중국 언론에 등장한 건 지난 15일이다. 전날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를 지역 방송이 뉴스로 보도하면서다. 남성은 방송 말미 피해 주민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방송에 나온 남자의 외모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뉴스를 보도한 앵커 역시 방송에서 남성을 거론했다. 그는 “화재보다 이 남성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했다. 상하이스트는 “앵커의 발언엔 이 남성을 약간 조롱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리우페이린의 평소 생활 모습을 담은 사진.[사진=chinanews.com]

방송이 나간 뒤 온라인상에선 남성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중국 네티즌들은 동영상 사이트인 투도우(tudou), SNS인 웨이보 등을 통해 방송 장면을 올리며 이 남성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결국 몇몇 블로거들이 남성을 직접 찾아가 그의 정체를 밝혀냈다.

이들의 취재에 따르면 남성은 56세의 리우 페이린(劉培麟)이란 사람이었다. 칭다오 빈민가에서 쓰레기와 고물을 주우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어머니의 병원비로 1만위안(약 180만원)의 빚까지 지고 있었다. 리우씨는 그럼에도 항상 긍정적으로 행동해 현지에선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의 ‘다씨거(大喜哥)’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신문·책 읽기와 일기 쓰기가 취미인 그는 여전히 불이 난 집에서 살고 있다. 딱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여장을 한 이유도 조금 밝혀졌다. 중국 온라인상에선 리우 씨가 예전에 자신에게 잘 해줬던 한 과묵한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연이 소개됐다. 하지만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범죄에 연루된 연인이 감옥에 간 뒤로 소식이 끊겨버린 것이다. 리우 씨는 아직도 연인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리우 씨의 특이한 모습을 비웃으며 바라보던 중국인들은 그의 숨겨진 사연이 공개되자 리우 씨를 도와주자는 동정의 여론을 형성했다. 이런 움직임을 바탕으로 방송사들도 앞다퉈 리우 씨를 찾아가 그의 사연을 보도하면서 리우는 전국적 명사가 됐다.

리우 씨의 사연은 중국 내에서 소수자 인권을 존중하자는 사회 여론까지 만들고 있다. 중국 일간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는 최근 사설을 통해 리우 씨를 처음 소개한 현지 방송 앵커의 발언을 비판했다. 화서도시보는 그러면서 “소수자에 대한 조롱 대신 사랑과 보살핌을 주자”고 촉구했다. 중국 네티즌들 역시 이 앵커가 리우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네티즌들은 리우 씨가 자신의 방 거울에 쓴 “새날이 시작됐다 화이팅!” 이란 글을 인용하며 그의 긍정적 태도를 본받자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승호 기자

리우페이린의 사연을 보도한 중국 현지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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