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없어 보이던 16세 아이 검사해 보니 위험수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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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학교폭력 실태가 곳곳에서 불거지자 ‘혹시 내 아이도?’라고 우려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궁금증을 풀려고 시작한 대화가 관계만 악화시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먼저 아이의 심리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나 기초 정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걸 돕는 진단도구가 나왔다. 경기도교육청이 최근 개발한 학생 정신건강 진단 매뉴얼이다.

 기자가 이 도구로 조카들의 심리검사를 직접 해봤다. 경기도 화성시 내 중학교 2학년 이소연(14)양과 이천 도예고 입학을 앞둔 이소정(16)양,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이지연(17)양이 대상이다. 검사 전 부모들은 “ 우리 아이들에겐 사춘기의 가벼운 반항과 진로 고민 외엔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진단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검사는 1차(청소년 정서·행동발달검사)와 2차(청소년 행동심층평가)로 이뤄졌다. 결과는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반항장애, 학교폭력, 역기능 충동성 등을 수치로 알려준다. 국내외 전문 연구기관이 개발한 매뉴얼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개량했다.

 1차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이지연양은 외모 콤플렉스가 약간 있는 정도였다. 여드름 때문이다. 이소연양은 자신감이 다른 영역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소정양은 낙천적이었으나 전반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한 경향을 나타냈다. 부모들이 예상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2차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소정양은 자살 척도를 알아보는 2개 영역에서 주의를 요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역기능적 충동성이 또래 평균(6.84점)보다 높은 11점(12점 만점)이 나왔다. 이 점수가 높을수록 충동장애나 자살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연양과 소연양도 ‘자살생각’ 영역이 다른 영역 수준보다 다소 높았다. 소정양의 어머니 유수미(40)씨는 “아이가 지나치게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결과”라고 말했다.

 진단 매뉴얼은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http://goe.go.kr, 평생체육건강과 자료실)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학교에서도 이 도구로 검사를 실시해 학생지도에 활용한다. 다만 집에서 한 검사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최정분 장학사는 “검사 결과를 놓고 아이를 다그치거나 추궁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상 징후가 보이면 꼭 학교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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