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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퓰리즘’에 쫄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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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윤호
정치데스크

일반 유권자가 정당의 대표나 후보 선출에 직접 참가하는 국민경선. 이게 요즘 정치흥행의 보증수표라도 된 듯하다. 15일의 민주통합당 전당대회가 상징적이다. 선거인단 80만 명 중 당원보다 일반 유권자(60만 명)가 더 많았다. 휴대폰 눌러대는 이들의 엄지손가락에 당권이 왔다갔다 했다.

 한나라당도 문호를 활짝 열겠다며 휴대폰을 든 ‘엄지족’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여당에 대한 불신이 국민경선을 하지 않아서였나. 경제 못 살리고, 인사 어지럽게 하고, 돈봉투 돌리고, 뭔가 켕긴 거 숨기려 하다 보니 그런 거 아니었나. 민주당으로 몰린 엄지족들은 이에 대한 불만과 실망의 산물이지 국민경선 제도 자체의 효과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따라 한다 해서 흥행에 꼭 성공할 보장은 없다. 자칫 미적지근한 반응의 엄지족들에게 온갖 당근과 사탕을 안겨주려는 ‘폰퓰리즘(휴대폰+포퓰리즘)’으로 내달릴 가능성도 있다.

 이런 모습은 몇 해 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종전엔 국민경선보다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된 지구당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정당과 의원들의 현안이었다. 당시 여야는 ‘고비용 저효율’ 정치에 대한 비판에 밀려 지구당의 기능에 대해 깊은 논의 없이 폐지 결정을 했다. 그 효과에 대해선 아직 찬반이 엇갈린다. 돈을 덜 쓰게 됐으니 잘됐다, 아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통로를 위축시켰다, 하며 말이다.

 분명한 것은 여야 모두 오프라인 지역조직의 필요성에 공감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가 지난해 발표한 ‘지구당 폐지와 한국 정당의 민주화’라는 논문에 잘 드러난다. 여야 당원 3000여 명을 상대로 한 그의 설문조사에서 “지구당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7.6%에 달했다. 실제 시·도당 아래에 지역조직을 설치하고 유급 사무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계속 제출되기도 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2006년),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2007년), 강기정 민주당 의원(2008년)이 잇따라 그런 정당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다 지금은 바람이 확 바뀌었다. 모바일 국민경선은 필수과목이 됐다. 한나라당에선 중앙당을 폐지하고 의원 중심의 원내정당으로 변신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판이다. 대중정당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선거와 의정활동을 당의 핵심 기능으로 삼자는 발상이다. 돈봉투 사건으로 실추된 당의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대안이긴 하다.

 하지만 정당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식 원내정당이 과연 우리 정당정치의 모범답안이 될까. 중앙당이든 원내정당이든 당원이 권력을 나눠 갖는 당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뭘 택하든 그게 그거다. 또 원외조직을 무시하고 선거 때마다 엄지족만 잘 관리하면 될까. 그럼 선거가 없을 때 일상적인 풀뿌리 민주주의는 제도권에서 어떻게 소화할 건가.

 아무리 정당 불신 시대라 해도 정당이 해야 할 정치적 기능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종이신문의 위상이 흔들린다 해도 콘텐트 생산 기능 자체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형식과 틀의 문제이지 기능은 계속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집약해 정책으로 내놓고, 이를 통해 선거에서 권력을 잡거나 내놓는 게 곧 정당이다. 인터넷이다, 모바일이다 하며 외부여건이 바뀌어도 그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다. 따라서 정당을 자학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정당이 쪼그라들면 결과적으로 국민의 권익도 축소된다. 정당을 통해 자신의 뜻이나 이해관계를 정치와 정책에 투영시켜야 할 국민의 권익 말이다. ‘폰퓰리즘’에 쫄지 말고 내 길을 가련다 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정당, 어디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