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범죄자 유전자 DB화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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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전과자 등 우범자 3백여만명에 대해 유전자(DNA) 샘플을 채취하라고 지시하자 인권단체들이 반발해 파문이 일고 있다고 더 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지문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은 사적인 정보를 보여주는 DNA 정보를 수사기관이 보유할 경우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논쟁의 핵심이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달 31일 "3년 안에 자동차 절도범에서부터 살인범까지 모든 범죄 우려자들의 DNA를 영국법과학연구소(FSS) 국립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기 위해 1억9백만파운드(1천7백50억원) 의 추가예산을 투입하겠다" 고 밝혔다.

그는 "사법과 교정제도가 19세기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21세기에 맞게 대폭 개혁할 것이며, 범죄수사도 첨단 기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며 "시민단체들이 이를 인권과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 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경찰은 지금도 범죄 용의자나 현행범 또는 전과자 등에 대해 DNA 샘플을 채취할 수 있다.

그러나 1인당 채취 비용이 40파운드(6만4천원) 나 되기 때문에 샘플 채취를 중범죄자에 한정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대폭 예산을 투여할 경우 경찰은 아주 경미한 사범들에 대해서도 DNA를 채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공격 또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경찰이 기소단계에서 풀려났거나 법원에서 무죄로 석방된 수천명의 DNA샘플을 폐기하지 않고 보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영국 법원은 최근 살인혐의로 기소된 마이클 웨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은 유죄증거로 그의 DNA 자료를 제시했다. 이 DNA 자료는 그보다 1년 전 마이클 웨어가 마약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채취된 것이었다.

영국 법원은 "경찰이 제출한 증거 자체가 적법한 과정으로 확보된 게 아니다" 며 채택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또 경찰이 이미 확보한 DNA정보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내무부가 확보한 DNA 정보의 10%가 별 효용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경찰의 경우 9백개 샘플을 조사한 결과 3분의 1이 무용지물이었다.

범죄와는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DNA를 마구잡이로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 경찰은 범죄자 94만명의 DNA정보를 갖고 있으며 범죄 현장에서 채취된 샘플이 8만3천개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범죄자에 대해 DNA 샘플을 채취할 근거법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DNA 기술이 발전할수록 DNA 정보의 소유와 이용을 둘러싼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논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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