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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정원은 왜 이스라엘 모사드처럼 못하느냐고 물으신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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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정보 및 특수작전국)의 전직 국장을 작년 초 텔아비브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중해변의 작은 커피숍. 기대했던 인상이 아니어서 살짝 ‘실망(?)’했다. 곱게 늙은 대학교수 같았다. 그는 온화한 표정과 부드러운 어조로 성심껏 질문에 응했다. 그러나 이란 핵 문제로 화제가 넘어가자 갑자기 태도가 싹 달라졌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는 데 필요한 ‘어떤 옵션’도 이스라엘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못질을 하듯 한 단어씩 끊어서 말했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이란의 젊은 핵 과학자가 그제 테헤란에서 폭탄 테러로 숨졌다. 나탄즈의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기체 분리 책임자로 일해 온 30대 과학자라고 한다. 출근 도중 차량에 부착된 자석폭탄이 터져 목숨을 잃었다. 최근 2년 새 테러로 숨진 이란의 네 번째 핵 과학자다. 2010년 두 명의 핵 과학자가 차량 폭탄 테러로 즉사했고, 작년 7월에도 핵 과학자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그때마다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했다. 모사드의 소행이란 것이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 건국 이듬해인 1949년 총리 직속 기관으로 창설됐다. 9개국 10억 아랍인에 포위된 신생국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서는 유능한 정보기관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모사드의 문장(紋章)에는 ‘지략(智略)이 없는 백성은 망하지만 지략이 있는 백성은 평안을 누린다’는 성경 문구(잠언 11장 14절)가 적혀 있다. 모사드는 모든 지략을 동원해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약 1200명의 정예요원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서라면 침투·습격·납치·암살 등 ‘어떤 옵션’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BBC의 작가 겸 PD 고든 토머스가 모사드 관련 인사 200여 명을 직접 인터뷰해 쓴 『기드온의 스파이』에 따르면 보복과 예방이 모사드 ‘비밀 공작(covert operation)’의 두 축이다. ‘눈에는 눈’을 신조로 지구 끝까지 쫓아가 철저하게 응징하고, ‘적의 뇌를 삼킨다’는 자세로 잠재적 위협 요인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것이다. 모사드가 보기에 이란의 핵 과학자는 적의 뇌에 해당할 수 있다.

 토머스 홉스 식으로 말하면 약육강식의 무정부 상태가 국제사회의 본질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남을 죽여도 좋은 것일까. 잘못된 선민(選民) 의식은 아닐까. 대한민국 국정원은 왜 모사드처럼 못하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능한 국정원’을 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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