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MLB 시간탐험 (12) - 상대를 잘못만난 노히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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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들에게 가장 영광스런 순간이 있다면 역시 '노히터(No-hitter)'의 순간일 것이다.

노히터란 선발투수가 정규이닝인 9회 혹은 그이상의 이닝동안 안타를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노히트 노런(No-hit no-run)'은 점수를 허용하면 안되는 반면, 노히터는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메이저리그 125년동안(내셔널리그가 출범한 1876년을 기준으로 함) 노히터는 217경기에 불과했다. 그중 노히트 노런은 202경기였으며, 안타는 물론 사사구, 실책으로 인한 진루도 허용하지 않는 퍼펙드 게임은 단 9번 밖에 없었다.

1917년 5월 2일 위그맨 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일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전'이 벌어졌다.

양팀 선발 프레드 토니(신시내티)와 히포 본(시카고 컵스)은 그해 각각 24승과 23승을 거뒀을 정도로 물이 오를대로 오른 투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에이스들 앞에 양팀 타자들의 방망이는 맥을 추지 못했다.

9이닝동안 양쪽 모두 노히트 노런. 토니는 1개의 볼넷, 본은 2개의 볼넷과 에러로 인한 출루를 허용했을 뿐이었다.

서로 엇갈렸더라면 두번의 대기록이 세워졌을 순간,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한쪽의 손만을 들어줬다.

10회 선두타자로 나온 신시내티의 유격수 래리 코프는 그 해 친 11안타 중 하나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날렸다. 노히터가 깨진 후, 투수 히포 본보다 더 일찍 무너진 것은 컵스의 수비였다.

1사 1루에서 컵스의 중견수 사이 윌리엄스는 할 체이스의 평범한 플라이를 어이없이 놓쳤다. 1사 주자 2, 3루, 졸지에 패전의 위기에 몰린 본이 상대할 다음 타자는 짐 터프였다.

터프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낸(육상 5종경기, 10종경기) 특이한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 하지만 터프는 프로스포츠인 마이너리그에서 1달동안 뛴 것이 밝혀져 후에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만다.

훗날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한 터프에게 야구는 부업이었다. 터프는 주로 빠른 발을 이용 대타 또는 대주자로 기용됐다.

아무튼 1사 2, 3루의 찬스에 등장한 터프는 평범한 투수앞 땅볼을 쳤다. 홈을 파고드는 3루주자. 본은 곧바로 홈에 공을 뿌렸으나 포수 아트 윌슨은 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게임의 유일한 득점이 나오는 순간.

10회말 토니는 3타자를 깔끔하게 막아냈고, 영광의 10이닝 노히터를 기록했다. 완벽한 투수전으로 진행한 덕분에 연장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시간은 1시간 45분에 불과했다.

자신의 친정팀을 상대로 노히터를 따낸 프레드 토니는 1918년 뉴욕 자이언츠로 이적했다가 2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은퇴했다. 13년 통산 139승 102패 12세이브, 방어율 2.69.

메이저리그 통산 178승을 올린 히포 본은 마이너리그 시절 기록한 두번의 노히터에 만족하며 1921년 컵스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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