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시민구단 히로시마 카프

중앙일보

입력

히로시마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역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지만, 사실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이다. 히로시마현 인구는 140만명 정도. 히로시마 카프는 도쿄에서도 멀고 오오사카에서도 가깝지 않은 지방에 위치한 구단이다.

히로시마구단이 창립된 해는 전쟁이 끝난 5년후인 1950년. 아직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가운데, 히로시마 카프는 시민 구단으로 탄생했다. 전쟁 후 먹는 것도 제대로 없는 가운데 한 기업이 모회사로 되어 구단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시민들이 돈을 모아 어렵게 히로시마 '시민' 구단을 만들었다.

이렇듯 히로시마구단의 창단배경은 타구단과는 다르다. 타구단은 모회사가 있고, 그 모회사가 지탱하면서 팀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히로시마는 선수 연봉은 물론 센트럴리그에 가입하는 비용까지 모두 시민들이 마련했다. 어떤 때는 돈이 없어서 원정을 못갈 정도로 심각한 제정난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팬들은 히로시마구단을 사랑해 왔기 때문에, 히로시마 시민들의 히로시마구단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이것은 요미우리 팬이 요미우리를 좋아하는 것과는 수준이 틀리다. 히로시마 시민이 히로시마구단을 만들고, 그 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항상 시민과 같이 있었던 구단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구단 정식명칭은 '히로시마 토요 카프'라고 해서 마츠다 자동자가 모회사로 되었지만, 히로시마구장은 히로시마 시민 구장으로 아직 시민의 구단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애착이 너무 지나쳐서 히로시마 중심주의 같은 이기주의를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12구단중에서 가장 예의가 없는 팬이 히로시마 팬이라고 하기도 한다. 경기 중에 상대팀 야수에 야유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팬들의 어이가 없는 행동 때문에 시합이 중단될 때도 가끔 있었다.

어떤 때는 전국으로 생방송되고 있는 가운데, 한 팬이 백스탠드의 팬스 위로 올라가 30분정도 있었고 그동안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도 있었다. 앵커도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그 현장을 중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외에도 구단 창립 후 7년만인 1956년, 어떤 팬이 요미우리와의 시합에서 투수에 던진 맥주병이 다리에 맞아 큰 상처를 입혔던 적도 있었다. 이때 요미우리측은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히로시마하고 시합을 치르지 않겠다고 해서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후 범인이 밝혀지자 해결은 되었지만, 하여튼 히로시마에는 애착을 초월한 과격한 팬들이 많았다.

지금은 옛날같은 사건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도 12구단 중에서 과격한 팬들이 여전히 많다.

시민구단으로 탄생한 히로시마는 항상 꼴찌였다. 창립초기에는 연습장도 없었고 자기 구장도 없었다. 선수 연봉도 제대로 줄 수 없어서, 어려운 시기를 지냈다. 그러다가 점점 설비도 좋아지고 좋은 선수들도 한두명씩 들어왔다. 그리고 1975년에 첫 우승을 거뒀는데, 이때부터 히로시마는 A클라스(1위~3위)에 들어가는 일류구단이 됐다.

히로시마의 스타일은 경기중반까지의 1~2점차이의 리드를 리드를 종반에 마무리 투수진이 지켜주는, 투수가 강한 구단이었다. 이것은 지난 몇년전까지만 해도 그러했지만, 이 경향도 점점 바뀌어졌다.

올해 전반전만 해도 히로시마는 역전패를 당하는 경기가 19경기나 됐고, 이것은 리그 최다였다. 이것은 선발투수진의 부족 그리고 중간과 마무리투수의 부족 때문이다. 전반전부터 투수가 무너진 히로시마는 후반에 들어가서도 역시 투수진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후반전에 들어간 직후 20경기를 보면, 히로시마는 한경기당 7.5점을 실점했다.(전반전은 한경기당 4.7실점).

히로시마의 4번타자 에토가 FA로 요미우리에 이적한 후 히로시마의 타선이 약해지리라 걱정되어 왔지만, 예상외로 히로시마 타선은 상대팀 투수들이 쉽게 여기기 힘들 정도로 실력발휘를 하고있다. 특히 젊은 선수의 도약이 눈에 띄었다. 히가시데, 아라이, 모리가사 등 장래성이 많은 젊은 선수가 활약했다.

선발투수, 마무리투수가 든든했던 옛날과는 달리, 현재는 젊은 타자로 팀을 이끌고 팀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히로시마는 지난 2년동안 5위로 부진했고, 올해도 현재 4위. 10년 전만해도 우승후보였던 히로시마가 또다시 A클라스에 오르기 위해서는 젊은 선수들의 육성과 투수진의 부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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