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선생님’ 만나 왕따 탈출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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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 활동을 통해 ‘왕따’에서 탈출한 홍미선양(왼쪽)이 5일 모교인 일산중학교를 찾아 문승민 교사와 교정을 걷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의 일산중학교. 문승민(41) 교사와 홍미선(18·경기영상과학고 2년)양이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미선양이 졸업한 지 2년 만에 모교를 찾은 것이었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너무 보고 싶었어요.”

 “미선인 더 의젓해졌구나. 보기 좋다.”

 “선생님께서 아빠처럼 학교에서 절 도와주고 지켜주신 덕분이에요.”

 중학교 2년간 선도부 활동, 졸업식 날 모범상 수상에 상위권 성적. 미선양의 중학교 생활은 얼핏 보면 화려하고 순탄한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 중학교 생활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입학과 동시에 ‘왕따’가 됐다. 소심한 성격에 말수가 적은 미선양은 집에서도 먼 중학교에 배정된 탓에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 나서 친구를 사귈 만큼 적극적이지도 못했다. 같은 반 학생들은 그를 멀리했다. 점심도 늘 혼자 먹어야 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나를 마치 유령 취급했어요. 옆에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대했으니까요.”

 힘겨웠던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학생부장이던 문승민 교사가 다가왔다. 미선양의 어려움을 지켜봐 온 문교사는 그에게 선도부 활동을 제의했다. 등굣길 복장·두발검사, 인사예절 지도 같은 적극적이고, 때론 힘든 일이었다.

 미선양은 거듭 사양했다. 소극적인 성격에다 성적도 좋지 않은 탓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문 교사는 “힘든 일은 내가 도와줄 테니 한번 시작해보자”며 반강제적으로 선도부에 가입시켰다.

 주저하던 미선양도 차츰 선도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다른 학생보다 한 시간 일찍 학교에 나와 학생들의 등교 지도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그의 모습도 서서히 바뀌어갔다. 정신지체 장애학생들을 위해 따로 편성된 특별반에 수시로 들러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점심 시간엔 틈나는 대로 식사도 함께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장애학생들과 영화를 보러가는 등 나들이도 했다. 미선양의 달라진 모습에 같은 반 학생들도 맘을 열고 다가왔다. 친구가 늘어났고 성적도 쑥쑥 올랐다. 미선양은 문 교사와 ‘왕따 구출작전’도 펼쳤다. 그가 친구들의 입소문과 행동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찾아내면 문 교사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졸업식 날 모범상도 받았다. 미선양의 성공에 확신을 얻은 문 교사는 ‘왕따’ 학생 일부를 선도부원으로 선발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미선양은 “따돌림은 폭력 못지않은 정신적 피해를 준다는 점을 가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며 “아빠 같은 문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사는 “가정과 교사, 학생 등이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해야만 학교폭력과 왕따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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