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시민선거인단 64만 명 … 그들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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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송진수(29)씨는 며칠 전 회사 동료들과 모임을 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가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화제에 올랐고, 이어 자연스레 민주통합당 국민경선 얘기로 옮겨졌다. 모인 6명 중 3명이 이미 국민경선 선거인단에 가입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하면 1분도 안 걸린다”는 회사 동료의 말에 송씨는 퇴근길 버스에서 선거인단에 가입했다. 최근 스마트폰을 장만한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신기해하며 어머니도 가입했다. 평소 정치운동에 소극적이던 송씨였지만 참여하는 이들에 대해선 마음의 짐이 있었다. “여의도 앞에 앉아 시위할 여건은 안 되고, 사소해 보이더라도 참여할 길이 있었으면 했다. 모바일 선거가 그런 나를 움직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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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 경선에 ‘80만 선거인단’의 참여가 확정됐다. 7일 선거인단 접수를 마감한 민주당은 “대의원 2만1000명, 당비 당원 12만7920명 외에 모바일과 인터넷 등으로 신청한 일반 시민 64만3353명 등 총 79만2273명의 선거인단이 구성됐다”고 밝혔다.

 64만 명이 넘는 시민 선거인단은 민주당의 예상을 2~3배 초과하는 규모다. 이 중 모바일 투표를 희망한 사람은 전체의 88.4%(약 57만 명)였다. 민주통합당은 9일부터 14일까지 모바일 투표를 한다. 원래는 사흘간 할 예정이었지만 인원이 많아 기간을 늘렸다.

 민주통합당은 64만여 명의 신청자가 누구인지, 왜 선거인단에 가입했는지, 누구를 지지하는지 파악하기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취재팀과 만난 모바일 투표 신청자 임권택(29·건축설계회사 근무)씨는 민주통합당 지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경선 후보들의 면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선거인단에 가입하게 한 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여자친구와 ‘나꼼수’였다. 그는 “인기투표적 요인이 있다는 측면을 알고 있지만 정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대규모 ‘아마추어’ 선거인단이 구성되면서 단연 반사이익을 보게 된 쪽은 당내 조직기반이 약하거나 직업정치인으로서 경력이 짧은 후보들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원외인사인 문성근 후보의 대표(경선 1위) 선출 가능성도 나온다. 문 후보는 선거인단과 관련, “누가 강요해 참여한 게 아니다. 소통과 공감, 직접적 참여를 위한 정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경계와 불만도 있다. 이강래 후보는 최근 토론회에서 “선거란 후보자가 유권자를 확정해놓고 자기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인데 우리는 유세하며 유권자를 모으고 있다. 선거가 아닌 모집경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적 인기가 판세를 바꾸는 현 상황뿐 아니라 오랫동안 당비를 내고 민주통합당 정책을 지지해온 당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참여정치’란 측면에선 정당의 진화로 볼 수 있지만 자칫 정당 구성의 핵심 요소인 ‘당원의 해체’를 촉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선 후보들은 ‘나꼼수’가 일반인의 정치의식과 행동에 실제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꼼수’는 지난 2일 한명숙·박지원·박영선·문성근 후보 네 명만 초청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편향성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녹음에 참여한 후보들을 제외한 다섯 명도 3분간 후보 연설을 담아 ‘나꼼수’에 올리기로 했다. 팬 카페 ‘나꼼수’와 ‘정봉주와 미래권력’의 회원 수를 합하면 22만 명에 이른다.

 정당 바깥의 요인이 정당정치를 쥐고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성이(정치외교학) 경희대 교수는 “모바일을 선거인단 모집에만 이용하면 이벤트식 인기투표가 될 수밖에 없다”며 “공약 검증이나 정책 토론에 적극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인식·정종훈·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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