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중국이 글로벌 패권 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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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반 크라스데프
불가리아 소피아 자유전략센터 소장

요즘 유럽인들에게 미래는 다소 혼란스럽다. 강력한 정치·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은 빚에 허덕이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재정위기로 인해 힘 빠진 구대륙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국제사회의 여론은 서방에 등을 돌렸다. 글로벌 위기의 근원지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은 글로벌 중앙무대로 올라서고 있다. 예전 농담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낙천주의자들은 중국어를 배우고 비관주의자들은 소련제 소총인 칼라시니코프 사용법을 배운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부상에 대한 상반된 대응 자세를 빗댄 말이다.

 일각에선 중국의 경제·정치·국민적 토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파워의 중심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가 과연 어떤 형태로 구체화될지 궁금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 대해 논의할 때 주로 이념·경제·역사·군사력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와 향후 중국이 주도할 수도 있는 국제사회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양국이 해외에서 보여준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용광로(melting pot)와 같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매력 중 하나는 이주민들을 미국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신이 미국인은 될 수 있지만 절대 영국인은 될 수 없다”는 말도 이런 미국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변화에 능한 미국이 글로벌 어젠다를 바꾸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은 현재 룰을 만드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적응하려 한다. 중국과 다른 나라의 관계는 집단이주(디아스포라) 역사와 관계가 깊다.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수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보다 많다.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화교는 본토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차이나타운을 형성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중국인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심지어 외국에 살고 있을지라도 함께 살고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을 ‘그들’이라고 부르며 구분짓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인종과 민족의 용광로인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외에도 미국과 중국의 차이점은 적지 않다. 미국인들은 일을 할 때 목소리를 높이고 깃발을 높이 치켜드는 반면, 중국인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화교들은 조용히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의 규칙에 적응해 이윤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중국인 사회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지 않으면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 같은 중국인들의 성향으로 볼 때 그들이 글로벌 패권을 쥐더라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변화의 주체로 나서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힘을 휘두르지 않고 조용히 있기만 할 것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가치를 공유하며 자신의 방향으로 따라오기를 원하는 미국과 큰 차이가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중국인들은 새로운 글로벌 룰 대신 이미 존재하는 룰을 활용해 최대한 이익을 얻는 데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반 크라스데프 불가리아 소피아 자유전략센터 소장
정리=최익재 기자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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