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복지 원조는 보수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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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채인택
논설위원

성장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4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좌파는 복지, 우파는 성장’이라는 도식적인 구호가 설득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복지를 뒤로 미루고 재원을 성장에 우선 투입해 파이를 키우자는 주장은 흘러가버린 유행가가 됐다. 성장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살기도 나아지지 않은 탓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파동을 치른 뒤로는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절판됐다. 그 이후 복지는 야권 전유물에서 여야 공유물로 변했다. 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의원은 복지 전도사로 나섰다. 이어 이 대통령마저 2일 신년 특별국정연설에서 “복지제도를 보다 촘촘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젠 복지가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됐다. 거의 모든 정파가 복지 확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정파 간 이견도 별로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러면서 복지가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는 좌우를 넘어 어떤 정권이든 당연히 추진할 정부의 의무일 뿐, 표를 모으는 선거 도구로서의 매력은 사라지고 있다. 정파 간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박 의원의 선제적인 복지정책 제안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그가 처음 복지를 들고 나왔을 때 왜 보수 정치인이 포퓰리즘적인 복지를 주장하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복지정책을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간 덕분에 야권은 복지라는 선거 호재를 놓쳤고, 그는 조용히 정치적 승리를 하나 낚아챘다. 그 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보수가 꼬리를 내렸느니, 정체성을 잃었느니,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됐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나가고 있는 것도 선제조치에 따른 승리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복지를 내세우는 것이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도 아니다. 원래 역사적으로 근대 복지정책은 보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근대사회 복지 모델을 정립한 인물이 부국강병책으로 통일과 강대국화를 이루면서 보수의 원조로 평가받은 독일제국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이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건강보험법(1883)·산재보험법(1884)·고령장애연금법(1889)을 차례로 마련했다. 질병이나 산업재해, 또는 고령이나 장애로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해도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들이다. 비스마르크가 이런 정책을 편 것은 좌파로 전향해서도 아니고, 보수주의를 포기해서도 아니다. 나라와 체제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복지제도 도입의 이유는 첫째로 당시 높은 임금으로 유럽의 숙련 노동자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던 미국에 대한 견제였다. 미국에 없는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숙련 노동자들의 이민을 막아 국가 경제발전을 지원하는 취지도 있었다. 당시 미국은 보잘것없는 개인이 오로지 노력 하나로 가난과 역경을 뚫고 성공에 이른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고성장을 이뤘으나 사회보장 제도는 없었다.

 둘째 이유는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주장하는 체제전복적인 좌파에 대한 선제적인 조치였다. 1878년 반사회주의자법을 만들어 좌파를 탄압했으나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한 비스마르크는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으로 혁명을 주장하는 좌파를 정치적으로 누를 수 있었다. 복지정책 도입으로 노동자의 상당수가 혁명에 등을 돌렸다. 좌파는 혁명에 골몰한 나머지 사회보장이라는 정책 대안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국 비스마르크는 이데올로기에 유연한 태도로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찾아서 선물한 덕분에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120여 년 전 비스마르크의 사례를 되새김질해 보니 박 의원의 복지 드라이브는 올해 선거와 국정운영까지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올해 선거의 쟁점은 다시 경제로 집약되고 있다. 이는 최근 본지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새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54.0%가 ‘경제’라고 대답한 데서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