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주요업종 편중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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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최근 반도체.컴퓨터 및 주변기기.무선통신 등 특정 제품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상반기 중 이들 세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27.2%)을 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산업은 전자.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서너개의 산업이 선두 그룹을 형성해 수출과 산업 발전을 이끈 다두(多頭)마차 체제였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전후해 국내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고 세계적으로 전자.정보통신(IT)붐이 일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와 IT산업이 앞서가는 과두체제로 변했다.

한국은행 김유곤 산업분석팀장은 "한국의 전자.IT산업은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만한 수준까지 올라섰지만 다른 제조업의 비중은 계속 줄고 있다" 며 "주요 제조업의 구조조정을 빨리 끝내고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고 말했다.

◇ 전자.IT산업의 초호황〓반도체.휴대폰.액정표시장치(LCD)를 주로 생산하는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3조1천8백29억원으로 12월결산 상장사 전체 순이익의 30.6%였다.

여기에 LG전자.SK텔레콤.아남반도체.삼성SDI 등 전자.IT업계 선두 5개사 순이익을 합치면 비중이 44.4%로 높아진다.

전자산업이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년만 해도 9.2%였다. 90년 14.3%로 높아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24%로 껑충 뛰었다. 정보통신산업이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처음 10%를 넘어섰다.

수출도 이들 산업에 기대는 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올해 전자산업의 수출액은 6백억달러로 예상했다.

전체 수출에서 전자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90년 27.4%에서 95년 35.5%, 올 상반기에는 38.7%로 치솟았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전자 등 빅3 전자회사의 상반기 수출은 사상 최대인 1백73억달러로 전체 수출액(8백29억달러)의 20%를 차지했다.

반도체의 올해 연간 수출액은 연초 전망치보다 15억달러 많은 2백50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올 상반기 순이익 상위 10개사 안에 전자.정보통신 업체가 6개나 될 정도로 이들 업종의 장사가 잘됐다.

이에 고무된 선두 전자업체들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조 단위를 투자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95년 반짝 호황 이후 과잉투자에 반도체 경기 불황이 겹쳐 90년대 후반 국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 그때와 상황이 비슷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장일형 상무는 "D램.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디지털 가전.통신기기 등 앞선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이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며 새로운 개념의 첨단제품이 시장을 형성하는 단계이므로 2010년까지는 전자업계의 신장세가 이어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 변수 많은 다른 산업〓자동차.조선업도 실적이 좋은 편이지만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여전하고 급변하는 해외시장 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르는데다 대체수요가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자동차공업협회 유기홍 정보조사팀장은 "세계적으로 올해 자동차가 2천만대 정도 과잉공급될 것으로 예상돼 수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국내 업체는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등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다" 고 말했다.

조선업계도 선박 수주에선 세계 1위(41%)이지만 ▶가격 측면에선 중국 등 후발국이 추격해오고▶기술 측면에선 여객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건조 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출과 내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설과 섬유.신발 업종 등은 위기감이 더하다.

90년 43억달러 어치를 수출해 3위를 기록했던 신발산업은 지난해 8억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쳤다.

과잉설비 상태인 섬유산업도 96년 1만7천여개에 이르렀던 업체 중 2천여개가 문을 닫았다.

석유화학은 과잉설비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건설업은 업체 수는 올들어서만 1천여개가 늘어난 가운데 수주가 줄어들어 도산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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