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은 공감입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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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호 27면

“아버지, 어머니 새해 첫날
무얼 하고 계십니까?
하늘나라에도 설을 지내고
고운 한복을 차리시고 세밸 다니십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큰고모님, 조카들
한 상에 둘러서 떡국에 윷놀이 즐기시고
이 세상 자식들 이야기에
웃음꽃 피우십니까?
새해 첫날 밤 눈물이 방울지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밤 깊도록 도란도란 옛이야기 들려주시던
목소리가 이젠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배 드립니다.
올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웃음소리 가득한 하늘나라에서
다시 뵈올 때까지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삶과 믿음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면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미련과 후회, 결심들이 교차하는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부모님을 떠올릴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는 왜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나갔을 때 그가 남긴 빈자리를 보면서, 그때야 비로소 그의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인생의 깨달음은 어째서 항상 한 발자국씩 늦는 것일까.

얼마 전 방송프로그램 녹화 때문에 한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두 시간 남짓한 만남이었는데, 그분과 나눈 대화가 오랫동안 내 머리에 맴돌았다. 그는 지금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수성의 회복이라 했다. 감수성(感受性)의 사전적 정의는 ‘자극과 관련하여 유기체가 내·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의 강도 및 변화에 대하여 보이는 반응성과 사회적 관계에서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경향성 및 특징’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감수성이 점점 메말라서 우리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다른 이의 아픔과 고통을 듣고 보아도 그저 무덤덤하다. 머리로만 생각할 뿐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점점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있다. 다른 이의 고통스러운 절규에 귀를 막아버린 것처럼 무심한 일이 또 있을까? 이러한 일은 사회관계 속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가족관계 등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니 진정한 소통은 먼 이야기인 것만 같다. 적어도 우리는 다른 이의 고통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도와주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의 마음을 공감하며, 진정으로 그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다른 이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적어도 감수성이 메마르지 않은 사람이다. 이렇게 감수성이 메마르지 않는다면 내가 남에게 그런 것처럼, 언젠가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누군가 나를 위해 나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 주며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다른 이와 공감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 때,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답고 행복할까? 올해는 감수성이 더 풍부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 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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