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일본의 ‘보통국가’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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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준섭
국방대학교 교수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최근 일본 정부가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설치법을 개정해 우주개발을 평화목적으로 한정하는 항목을 삭제하는 방침을 굳혔다면서 안전보장 분야에서의 우주 이용을 촉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한국에서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나 일본 국내에서는 거의 뉴스거리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미 이와 같은 사항은 2008년도 ‘우주기본법’이 제정될 때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헌법의 영향력이 여전히 권위를 지키고 있던 1969년 일본에서는 우주개발 이용은 군사 이외의 목적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국회 결의가 있었다. 그런데 2008년 4월 자민당·공명당·민주당의 찬성에 의해 입안된 우주기본법은 일본의 우주개발 이용이 “국제사회의 평화 및 안전의 확보, 그리고 우리나라의 안전보장에 기여하도록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함으로써 1969년의 국회 결의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이 법의 부칙 3조에 “정부는 1년 정도의 검토를 거쳐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의 목적과 기능, 업무의 범위 등을 개정해야 한다”고 적시되었다. 원래 우주기본법 성립 후 1년 정도 뒤에 개정되었어야 할 이 설치법의 개정이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은 물론 2009년도의 정권교체라는 변수가 작용했다. 다만 2008년도 우주기본법 제정 당시에 민주당도 찬성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JAXA설치법의 개정은 지극히 사무적인 절차라고 볼 수도 있다. 사무적인 절차에 불과한 이 설치법의 개정을 가장 우파적인 신문인 산케이신문이 좀 더 극적으로 각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본다면 노다 내각이 JAXA설치법 개정방침을 굳혔다는 보도에 과잉반응을 할 것이 아니라, 일본 안보정책의 큰 흐름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고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탈냉전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일본은 소위 ‘보통국가’로의 길을 착실하게 걸어왔다. 1999년의 주변사태법, 2003년의 무력공격사태법 등의 성립에 의해 일본은 이미 소위 평화헌법에 의거한 ‘전수방위’의 영역을 넘어선 군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009년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안보분야의 이 흐름은 변화하지 않았다. 2010년 민주당 정권하에서 개정된 방위대강은 ‘기반적 방위력’ 개념과 결별하고 ‘동적 방위력’ 개념을 새로운 안보정책의 핵심개념으로 설정함으로써 ‘보통국가’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기반적 방위력이 동서가 대치하는 냉전시대라는 환경 속에서 방위력의 존재에 의한 억지효과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 것에 반해 동적 방위력은 군사력을 보다 능동적으로 운용해 침략가능성을 사전에 제어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동적 방위력은 다분히 ‘전수방위’로부터 이탈할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기수출3원칙의 완화, 집단적 자위권의 제한적 행사 검토 등 민주당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안보정책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자민당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일본의 변화에 대해 단지 이런저런 비판을 가하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일본의 변화를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인지 더욱 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JAXA설치법의 개정에 의해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한 일본의 정찰능력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심지어 그 능력을 우리가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준섭 국방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