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STYLE] 워킹우먼 위해 ‘7cm 파올라’ 새로 만들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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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두 브랜드 ‘체사레 파치오티’의 회장 파올라 파치오티를 서울 청담동 매장에서 만났다.

“난 이미 ‘킬힐’에서 내려온 지 오래랍니다.” 촬영 준비를 하면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섹시한 구두 브랜드’로 꼽히는 ‘체사레 파치오티’의 회장 파올라 파치오티(63)에게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킬힐 신기를 권했다. 하지만 파올라는 정중히 거절했다. “나이 60이 넘은 내가 킬힐을 신은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파올라는 자신이 신고 온 7㎝ 굽의 구두를 신은 채 인터뷰를 시작했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캐주얼 운동화 ‘포러스(4us·위 사진)’. 살짝 굽이 있어서 키는 커 보이고 발은 편안한 게 장점이다. 화려한 디자인까지 가미돼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슬링백(뒤꿈치 부분이 트인 구두) 스타일의 ‘파올라’ 구두(아래).

체사레 파치오티는 파올라와 그의 남동생 체사레 파치오티(55)가 1980년 설립한 구두 브랜드다. 체사레는 현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디자인 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구두 브랜드가 대부분 여성화로 시작한 것과 달리 체사레 파치오티는 남성화부터 첫선을 보였다. 남성 수제화 공장을 운영했던 부모님의 영향이다. 기존의 점잖은 신사화에서 탈피해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던졌던 남매의 남성화는 곧 이탈리아 전역에서 ‘남성을 섹시하게 만드는 구두’라는 명성을 얻었다.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로메오 질리 등의 유명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시작했고 90년부터는 여성화도 만들고 있다. 보석과 크리스털, 스터드(징 장식), 레이스 등을 즐겨 사용하는 체사레 파치오티의 구두들은 남녀화 모두 화려해서 유명 팝 가수들이 즐겨 신는다. 고 마이클 잭슨과 비욘세가 대표적인 매니어다. 현재 전 세계 45개국에 직영매장을 갖고 있고 한국에는 2005년에 첫선을 보였다. 파올라의 이번 방한은 중국·일본·홍콩 등을 연결하는 아시아 시장 총괄 본부를 한국 지사로 결정하면서 이뤄졌다.

 -한국을 아시아 거점으로 정한 이유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이탈리아 사람들과 굉장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우리가 추구하는 구두 디자인을 잘 이해하고 있고 디자인 감각도 세련됐다. 아시아의 선두로서 시장을 잘 이끌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섹시한 구두’로 불리는 이유는. “우리의 구두를 신으면 특별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키가 별로 크지 않은 나의 두 아들도 체사레 파치오티의 구두를 신으면 굉장히 개성 있는 남자로 변신한다. 60이 넘은 나의 남편처럼 흰 백발의 남자도 우리 구두를 신으면 ‘멋쟁이 신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신고 있는 사람의 인상을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보이게 하는 힘, 그게 우리 구두의 자랑이다.”

가죽을 레이스처럼 정교하게 잘라 만든 체사레 파치오티의 10cm 굽 구두.

 -체사레 파치오티만의 디자인 특징은. “레이스 무늬가 들어간 빨강 솔(구두 밑창)과 단검 모양의 장식이다. 걸을 때마다 뒤에서 살짝살짝 보이는 빨강 레이스 솔은 여성의 앞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단검 모양의 장식은 무엇을 상징하나. “31년 전 이 디자인을 구상한 건 ‘강하면서도 섹시한 남성’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칼은 남자를 강하게 만드는 무기다. 뾰족한 날은 그 모양만으로 아찔하게 자극적이다. 90년에 여성화를 처음 선보이면서 킬힐을 대표상품으로 내놓은 것도 이 아찔한 칼날처럼 강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우리 컨셉트에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킬힐이 브랜드의 상징이라면서 왜 촬영을 위해 킬힐로 갈아 신지 않은 건가. “체사레 파치오티는 모든 여성을 위해 존재한다. 나이가 60이 넘고 보니 하루 종일 킬힐을 신고 일하는 게 참 힘들더라. 그런데 오늘처럼 멋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나 같은 여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생에게 제안해 지난해 처음 7㎝ 굽의 구두를 만들었고 ‘파올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뛰어다니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직장여성들과 나 같은 중년 여성들을 위한 구두다.”

 -파올라 라인의 앞코가 뾰족한 게 이해가 안 간다. 구두 앞코가 뾰족하면 발이 앞으로 쏠려 불편하지 않은가. “신체 무게가 발가락으로 쏠리지 않도록 발바닥 부분을 편하게 잡아주는 우리만의 밑창 디자인이 있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동생은 나이 들어가는 나를 보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을 만족시킬 만한 구두를 아주 세심하게 디자인하고 있다. 10년 전 내놓은 ‘포러스(4us)’ 운동화도 나 때문에 만든 신발이다. 굽이 안에 숨겨져 있어서 키는 커 보이고 발은 편하면서 디자인은 세련된 운동화다. 한국에서도 청담동 일대 중년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들었다.”

 -한국 남성들은 구두에 관한 한 아직 보수적이다. “우리가 판단한 바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에서 우리 브랜드의 매출은 여성화보다 남성화 부문이 훨씬 높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도 이제 구두를 여러 종류 갖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또 전통적인 디자인의 구두와 우리 구두처럼 개성이 강한 구두를 다양하게 소유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의 남성 구두 시장은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크다.”

 -한국 남성들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은. “한국에는 정말 미남이 많다.(웃음) 그런데 바지통과 길이를 너무 넓고 길게 입는 게 안타깝다. 바짓단이 구두를 가리면 오히려 키가 작아 보인다. 바지 밑으로 보이는 구두·양말 등을 통해 얼마든지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데 왜 이런 즐거움을 포기하는 걸까.”

검정 스타킹엔 검정 구두
구두 화려할수록 스타킹 단순하게

화려한 색깔의 스커트일수록 스타킹 색 맞추기가 힘들다. 여기에 신발 색깔까지 고려해야 하니 아침 출근길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파올라는 “기본적으로 검정·살색·갈색·회색 스타킹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가능하면 민무늬의 간결한 디자인이 좋다”고 조언했다. 구두 디자인과 색이 화려할수록 스타킹은 깔끔한 게 세련돼 보이기 때문이다. 파올라는 “이 중 가장 안전하면서도 멋스러운 스타킹 색은 검정이지만 이는 검정 구두에만 신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컬러가 있는 스타킹들은 비슷한 계열이되 색이 조금 더 짙은 구두와 함께 신는 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색이 화려한 치마를 입었을 때는? 살색 스타킹을 신고 치마 색과 비슷한 계열의 구두를 신는 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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