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의 세상읽기] 한·미·중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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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이 최고사령관 자리에 올랐다는 발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권력을 그 아들에게 가급적 신속하게 승계시키려는 과정의 일환이다. 젊은 김정은에게 주어진 각종 찬양 수식어와 직책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승계 과정을 꽤 서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10년 또는 그 이상에 걸쳐 서서히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던 일련의 작업들이 김정일 사망으로 갑자기 시동이 걸린 것이다.

  많은 서방 분석가는 북한이 오랫동안 이런 승계를 계획해왔으며 이 때문에 현재 권력 이양 작업을 조직적이며 단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분석은 맞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은 북한 체제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부터 이런 장례식에 대한 청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급작스러운 권력 이양을 위한 청사진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리 정해진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미, 북한 상황 ‘정상’으로 보면 안 돼

[일러스트=강일구]

 많은 분석가는 이 어두운 왕국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대해 서로 다른 이론을 적용하며 관측해왔다. 더 많은 분석가는 미국·한국, 그리고 중국이 북한에 펴야 할 정책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왔다. 어떤 사람은 미국과 한국이 김정일의 건강 상태와 관련해 더 나은 정보를 확보했어야 한다고 뒤늦게 말하기도 한다. 나를 포함한 또 다른 사람들은 중국이 성공적인 권력 승계에 영향을 주기 위해 평양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것이란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현 상황은 상당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국·한국·중국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게 훨씬 유용하다. 국제관계에서는 명확한 정보가 없을 때 상대방에 대한 계산착오가 불안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각국은 이런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정책을 집행하면서 무엇을 가장 피해야 할까.

  첫째, 미국은 지금의 북한 상황을 ‘정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미 국무부가 김정일 사망 발표 직후에 내놓은 반응은 북한이 차분한 상황이며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작업이 예정대로 진행 중임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 이는 미국이 동맹국들을 포함한 해당 지역의 다른 나라들이 아직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김정은을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또한 워싱턴이 이런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있고 않으며, 예산이나 이라크 철군 문제 등 다른 이슈에 주의가 분산돼 있다는 인상도 준다. 워싱턴은 베이징이나 서울이 북한에 대해 계속 관망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중국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북한이 취약한 상태를 이용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서울은 이번 사건을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있다. 이는 한국인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미국의 강건한 동맹국이지만, 이번 사안은 핏줄의 문제이지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다.

중, 한·미와 대화 포기하면 안 돼

 둘째, 중국은 이번 사태의 전개와 관련해 한국 및 미국과 대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중국은 전형적인 폐쇄적 태도로 앞으로 김정은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거의 밝히지 않으면서 권력 승계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 의사만 밝혀왔다. 한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임성남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김정일 사망 직후 중국 측에 먼저 접근했지만 베이징은 이를 서울과의 대화를 강화하고 신뢰를 쌓는 데 활용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불행한 일이다. 중국이 북한에서 어떤 이익을 추구하든 서울과 워싱턴의 협조 없이는 이를 얻을 수 없다. 베이징은 현재의 권력 교체를 계속 지원하는 과정에서 자국이 한반도의 지속적인 분단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여선 안 된다. 많은 사람이 김정일 사후 북한에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역사에선 전체주의와 개인숭배만 있어왔지 이런 것은 전례가 없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 베이징의 장기간에 걸친 이 지역에서의 위상에 큰 상처를 주게 될 것이며 중국은 분단된 한국을 지원한 마지막 강대국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국, 일방적 행동 곤란

 마지막으로 한국은 일방적으로 행동하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한국인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잘 안다. 하지만 한반도는 그들의 영역이다. 북한의 정치적 불안정은 중국과 미국에는 대외 정책의 한 이슈에 불과하겠지만 한국인들에겐 생사의 문제다. 바로 이런 급변 사태와 관련해 내가 겪어봤던 시나리오 게임에선 남한의 일방적인 행동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이것이 미국과 중국 간의 작용-반작용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은 어떠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막아야 한다. 서울은 중국이 북한에서 벌어진 상황을 틈타 서울을 워싱턴에서 멀어지게 하는 미끼로 북한을 활용하는 데에 유념해야 한다.

 남한은 지금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하는 취약한 상황이다. 정보는 북한과 중국이 쥐고 있다. 베이징은 이러한 취약함을 이용해 워싱턴을 배제하고 서울과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한·미 동맹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남한과 중국은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한국은 통일을 원하지만 중국은 통일된 한국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베이징의 모든 정책을 살펴보면 그들이 두 개의 한국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정부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많은 충고를 할 것이다. 나의 충고는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제언들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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