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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정조의 복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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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최두환
KT 경영고문

요즈음 사람들 모임에 안줏거리가 되는 것이 ‘복지’에 대한 얘기다. 일자리가 줄어든 젊은이들의 불만은 커져만 간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는 큰 소리로 복지를 말한다. 그래서 다들 복지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혜택은 누가 보고 부담은 누가 지는지, 정치 때문에 변질되어 가는 복지를 어떻게 바로잡을지에 대해 모두 한마디씩 나름의 견해를 풀어놓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복지는 어려운 문제였나 보다.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도 백성들의 복지가 쉽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결과가 선현들의 쌓인 경험과 지혜를 모으고 숙고해 펼친 그 시대의 복지론이다. “왕이 백성의 가난을 직접 구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왕은 부자를 키울 수 있다. 부자는 사람을 널리 쓰고, 이를 통해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

 위 말씀에는 나름의 혜안이 스며 있다. 가난 구제에 직접 나서는 것은 절대군주에게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부자를 키우고, 그들이 일자리를 만들어 가난을 구제하는 간접적 방법론을 들고 나왔다. 복지가 단순히 ‘더 거두어 더 나눠주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조의 생각을 요즘 말로 바꿔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아닐까. “정부가 세금으로 직접 가난 구제에 나서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을 키울 수 있다. 기업은 사람을 널리 고용하고, 이를 통해 사회복지를 이뤄야 한다.”

 복지부 장관을 지낸 최광 교수도 최근 강연에서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하는 것이지 정부가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점심값(세금)을 내게 주면 점심 사줄게’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술자리 복지론에서 사람들은 그냥 한쪽에서 떼어다가 다른 쪽에 갈라주는 ‘분배 복지’는 나아갈 방향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분배 복지에서는 떼이는 쪽은 불만스럽고, 받는 쪽은 나태해진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를 얻는 것만큼 잃게 되는 ‘제로 섬(zero sum)’도 못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떼이는 쪽은 불만으로 의욕이 상실되고, 받는 쪽은 나태해져 노력을 않게 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지는 ‘네거티브 섬(negative sum)’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아지는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의 ‘생산 복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 복지는 일자리 창출에서 시작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은 이에 따른 이익을 누리면서도 사회에 공헌하게 되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일을 하게 되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면서 재화를 얻게 되어 자긍심을 느낀다. 그래서 사회 전체로는 생산적이 된다는 주장이다. 네거티브 섬의 분배 복지를 유지했던 남유럽 국가들은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이에 반해 포지티브 섬의 생산 복지로 바꾸었던 스웨덴은 이런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고 있다.

 최근에 부쩍 많아진 ‘사회 기부’도 술자리에서는 좋은 안줏거리다. 기업이나 개인이 수천억원씩 사회에 내놓는다.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좋은 사회 기부도 그냥 생색내기 분배 복지처럼 운영된다면 그 효과는 기대 이하일 것이다. 어떻게 하든 생산 복지로 연결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하는 생산 복지’라는 말에는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잘될까’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까지 기업이 고용을 통해 사회복지를 이루는 데 기여해 왔는지 의구심이 들어서다. 소위 자본주의라는 허울 아래 지금의 기업주들은 고용을 통한 나눔보다는 자기 배불리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옛날의 부자들은 자긍심이 무척 강했다. 경주 최부자는 자기가 부리던 사람이 떠나면 낯을 못 들고 다녔다고 한다. 분명 자기가 뭔가 기대에 못 미치게 한 부분이 있어서 떠나지, 그냥 아무 일 없이 떠날 리는 없다고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상이 되면서 기업을 통한 간접적 복지가 옛날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고 절실해졌다. 하지만 기업주의 욕심 때문에 생산 복지가 생각만큼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옛날 부자와 달리, 요즈음 기업은 종업원을 줄여야 잘한 경영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사람을 얻으면서 부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버리면서 부를 먼저 추구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분배 복지보다 일하는 생산 복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단순한 이상론에 그칠 뿐이다. 정치권에서 분배와 기부만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두환 KT 경영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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