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입시 실패가 전화위복 기회

중앙일보

입력

2012학년도 특목고 입시가 끝났다. 대학도 수시모집 합격생이 발표했다. 4년제 대학의 정시모집 원서접수도 마감됐다. 특목고 입시와 대입 수시모집에서 합격한 이들이야 환하게 웃을 수 있겠지만, 그 뒤엔 초조히 마 음 졸이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수능 성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온 일부 학생들은 벌써부터 재수에 돌입하거나 외국 대학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이들의 재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입시실패를 밑천삼아 우뚝 선 학생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실패에 굴 하지 않고, 나의 꿈을 위해 전진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명덕외고 러시아어과 합격한 고임형양

 “국제중에 떨어졌습니다. 영어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실망이 컸어요. 제 인생 최초의 시련이었죠.“ 대원국제중 1기생을 꿈꿨던 고임형(서울 목동중 3)양은 3년 전을 이렇게 회고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미래도 없다’고 이를 악물었어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12세 소녀는 ‘외국어고 진학’이란 새로운 도전과제를 향해 다시 한번 칼날을 갈았다.

 영어공부에 매진하기로 했다. 공부시간을 다른 과목에 비해 2배 이상 할애했고, 자신만의 공부법을 만들었다. “듣기·말하기에 익숙해서 독해나 문법부분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중2부턴 문법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를 듣고 위기감까지 들더라고요. 독해와 문법을 동시에 공부하는 방법을 궁리했죠.”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문법사항을 3가지 색 형광펜을 사용해 표시해뒀다. 수동태는 초록색, 관계대명사는 주황색, to부정사는 분홍색 형광펜으로 밑줄 쳐 놓은 것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문법구조까지 함께 파악할 수 있으니 효율이 높아지더라고요.”

 그는 시험문제를 ‘적(敵)’이라고 표현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듯, 자신의 적인 시험문제를 파악하면 유형별 풀이법을 익힐 수 있다는 것. 중2가 된 뒤 이전 해에 치렀던 4차례의 영어 내신시험 문제를 분석했다. “시험에서 어떤 문제가 출제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어요. 영영단어 문제, 심화 문법 문제, 본문 응용문제, 접속사·관계대명사를 구분하는 문제 등은 시험에 반드시 출제되더라고요. 수업을 들을 때나 혼자 공부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죠.” 중2~3학년 시절 고양의 영어 내신은 ‘1-2-2-2’다.

 학습계획서 작성과 면접준비도 ‘필사적’으로 했다. 중3 여름방학부터 학습계획서를 쓰면서 면접준비를 병행했다. 학습계획서 주요 내용을 뽑아내 스스로 면접질문을 만들었다. 특히 ‘독서활동과 관련한 질문이 1개 이상 반드시 출제된다’는 주위의 얘기를 들은 뒤 이와 관련해 면접관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을 10개 이상 뽑았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서울·경기권 외고 면접 질문을 모두 뽑아 답을 달아보기도 했다. 노력의 결과는 ‘합격통지서’로 돌아왔다. 그는 국제중에 낙방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국제중에 떨어졌다고 상심하지 마세요. 고입과 대입, 도전할 기회는 많거든요. 그동안 자신의 잘못된 공부법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합격한 한기원씨

 한기원(19·서울 대일고 졸)씨는 올해 논술 중심 전형으로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의 합격비결은 따로 있다. 수능이다. 언어·수리·외국어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으면서 우선선발됐다. 수리영역은 만점이었다. “수리 만점 비결이요? 수학에 서린 한(恨)덕분입니다.”

 사실 그는 중학교 시절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했었다. 영어교재를 통째로 외우고, 문법을 익히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중학생 대상 영어교재는 모두 구매해 공부했다. 단어공부를 할 때는 어원은 기본이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파생된 뜻까지 모조리 외웠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소리를 들어왔었는데, 불합격 통보를 받은 거예요. 그 실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더군요.”

 울며 겨자먹기로 진학한 일반고. 중학교 때부터 나름 열심히 공부해왔던 덕에 다른 과목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수학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외국어고를 준비하면서 사실상 수학과목 공부를 놓았기 때문이다. 수학성적을 올리기 위해 ‘좋다’는 수학교재는 모조리 사 풀어봤지만, 결과는 암담했다. 고1 때까지 수학 내신시험에서 50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고 1 말, 다음해 전교 학생부회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한군에게 교사들은 “수학성적이 이런데, 학생부회장이 중요하냐” “공부나하라”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악물고 수학에 ‘올인(All-in)‘ 했죠.”

 고1 겨울방학이 되면서 수학 공부방법을 바꿨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많이 푸는 게 능사는 아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다. 수학교재 1권을 5차례 이상 풀었다. 풀이과정 하나하나를 반드시 손으로 쓰면서 풀었다. 아무리 쉬운 문제도 ?완벽히’ 이해하고 넘어가기 위해서다. “제 수학 공부방법은 간단해요. 말 그대로 ?풀고 또 풀고?예요. 몰라도 풀고, 알아도 풀고, 풀었던 문제도 또 풀었죠.”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문제를 본 순간 풀이방법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고2에 올라가자 수학성적이 70~80점대로 뛰었다. 고2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수학과목 석차 전교 3등을 차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반고에 진학한 게 다행이예요. 만약 외국어고에 붙었다면 공부 잘하는 친구들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수학성적을 올리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사진="최명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