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 포기하고 미국 명문대 도전

중앙일보

입력

노주영씨가 “멀리 내다보고 자신의 진로를 찾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며 대학입시를 치르고 있는 수험생들을 위해 응원하고 있다.

2012학년도 특목고 입시가 끝났다. 대학도 수시모집 합격생이 발표했다. 4년제 대학의 정시모집 원서접수도 마감됐다. 특목고 입시와 대입 수시모집에서 합격한 이들이야 환하게 웃을 수 있겠지만, 그 뒤엔 초조히 마 음 졸이는 학생들이 있다. 특히 수능 성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온 일부 학생들은 벌써부터 재수에 돌입하거나 외국 대학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이들의 재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입시실패를 밑천삼아 우뚝 선 학생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실패에 굴 하지 않고, 나의 꿈을 위해 전진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노주영(20·미국 에모리대 경제학과 3)씨는 2008년 치른 수능시험에서 기대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다른 영역은 1, 2등급을 획득했지만 언어영역이 문제였다. 평소보다 2등급이나 떨어진 4등급이 나왔다. 목표였던 중상위권 대학들은 언어영역을 필수과목으로 반영해 지원할 수가 없었다. 문과였던 노씨는 계열을 바꿔 언어영역을 반영하지 않는 서울지역 모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다니면서 줄곧 학과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그 해 8월 부모님과 상의한 뒤 자퇴하고 미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9월 부터 어학원에 등록해 TOEFL과 SAT를 준비했다. 주 5일간 매일 2시간씩 강의를 듣고 8시간씩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했다. 10월과 11월에 TOEFL을, 12월엔 SAT를 치렀다. 그리고 미국대학 입시를 준비한지 6개월 만에 미국 에모리대의 합격을 통보 받았다. US뉴스랭킹 20위권의 종합대학이다. 노씨는 “당시엔 수능성적에 맞춰 학과를 정해야 했지만 미국 대학에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기뻤다”고 회상했다. 이어 “입시에 얽매이기 보다 나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윤창식(20·가명)씨는 수능 성적이 평소보다 너무 낮게 나와 정시 지원을 포기한 경우다. 윤씨는 당시 상위권 대학의 수시 전형에 응시했으나 수능 성적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3~4등급이 나오면서 떨어진 뒤 실망감에 정시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특목고를 다녀 내신 성적도 저조했다. 돌파구를 찾던 중 미국 대학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12월에 국내 대학 정시모집에 원서를 내는 대신 한번도 공부한 적 없는 SAT를 준비하기 위해 어학원에 등록했다. 매일 16시간씩 4주간 강행군을 했다.

 한 달이 지난 뒤 치른 첫 SAT에서 1860점을 획득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다. 앞서 치른 토플 점수(102점)와 함께 1월과 2월까지 원서를 접수하는 미국 대학 중 15곳을 골라 지원했다. 우리나라 입시에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비교과활동과 포트폴리오도 다시 다듬어 제출했다. 그 결과 최종 펜실베니아주립대와 에모리대를 비롯해 10개 이상의 대학에 합격했다. 그 해 9월 미국 대학에 입학했다. 미국 대학 입시에 필요한 시험과 요건은 크게 SATⅠ과 SATⅡ, AP와 비교과활동, 내신(GPA), 토플 등이다. 이 중 SATⅡ와 AP는 대학에 따라 접수를 생략하는 곳도 많다. 한국학생이 단기적으로 미국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이유는 이 같은 미국 입시의 특성 때문이다. 엑시터 어학원 신기택 원장은 “수학(SATMath IIC)·화학·물리 등은 공부만 하면 SATSubject시험에서 좋을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AP 시험도 5점을 획득하면 미국 어느 대학에서도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어 학비를 절감하고 조기졸업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학생들의 공부 방식과 SAT과목의 특성이 맞아떨어지기는 점도 한 몫 한다. 리얼SAT어학원 권순후 대표는 “SAT작문의 객관식 문제는 문법 위주로 공부한 한국 학생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에세이 시험도 자유로운 쓰기 실력을 측정하기 보다 정해진 채점 유형에 맞출 때 점수가 높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집중해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지구력도 미국 대학 입시에선 장점으로 꼽힌다.

 주의할 점도 있다. 욕심을 내 단기간에 성과를 얻으려는 태도는 금물이다. 단기간 준비해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은 미국 내 순위가 중위권 이하인 곳이 많다.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려면 최소 1년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목표 대학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 원장은 “최근 몇몇 미국 대학들이 SAT나 ACT의 점수를 고려하지 않기로 했으나 최상위권 대학들은 이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US뉴스 평가에서 상위 50위권 대학들은 이런 시험점수를 더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재수로 인해 생긴 학업 공백기간(Gap year)에 대해서도 미국 대학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권 대표는 “미국 입시에선 재수에 대한 개념이 없어 1년간 SAT 준비만 했다고 하면 입학사정관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양한 진로체험과 비교과활동을 하면서 왜 미국 대학 진학을 결정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학 입시에선 점수화되지 않는 비교과 영역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의 진로와 학업계획을 제대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국내 입시에서 실패했다고 좌절하기보다 자신의 특기적성을 발굴해 계발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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