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 철수 언급 … 한국 선거 개입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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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이 1일 김정은 시대의 첫 신년 공동사설을 발표하고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대내외에 강조했다. 우리의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쳐 정권 교체를 이루고 북한 입맛에 맞는 정권과 상대하겠다는 전략도 내비쳤다.

 이날 노동당 기관지 등 3개 신문에 게재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 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승리의 해로 빛내자’는 공동사설엔 ‘유훈’이란 단어가 아홉 번이나 등장했다. “김정은 동지는 곧 위대한 김정일 동지”라는 표현도 했다. 김정은에 대한 충성과 내부 단결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비전 제시나 새로운 정책 제안은 없었다. 김정일 급사 이후 절대권력의 공백기에 북한이 안고 있는 고민을 보여준 대목이다.

 제한된 보폭 내에서 대외 전선(戰線)의 목표는 분명히 밝혔다. 무엇보다 ‘통미봉남’(通美封南·남한을 소외시키고 미국과 관계개선에 나섬) 정책을 재확인했다. 1만3000자에 달하는 사설에서 김정일의 최대 위업으로 칭송해 오던 ‘핵보유’ ‘위성’(사실상 장거리 미사일 운반체계)에 대해선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미국’이란 단어도 쓰지 않았고, 2009년부터 3년간 신년사설에 담아온 ‘비핵화 실현’ 입장도 담지 않았다. 주변국 관계에선 중국·러시아와 선린 우호관계를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1994년 제네바 북·미 협상 때 한국이 철저히 배제된 상황을 재현하고 북한과 주변국 외교에서도 한국을 소외시키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각각 합의한 6·15공동선언, 10·4선언 발표 5돌을 강조하고 주한미군 철수도 5년 만에 주장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나서겠다는 유화 제스처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사설은 “남조선 보수집권 세력은 민족의 대국상을 외면하고 조의 표시를 방해했다”며 “집권세력은 인민들의 준엄한 심판 대상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역적패당과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는 국방위원회 성명에 이은 공격이다. 지난해 언급했던 남북대화나 협력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거를 전쟁과 평화라는 이분법 구도로 만들고 남쪽의 여론 분열을 꾀해 정권 교체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남한에 강경하게 나오는 것도 내부를 단속하려는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청와대도 “예상보다 낮은 수위”란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평화와 안정의 한반도라는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 가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담을 예정이다.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거론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수정·이원진 기자

◆신년 공동사설=1월 1일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을 통해 발표하는 북한의 신년사. 한 해 대내외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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