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53세 서능욱, 40년 만의 첫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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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능욱 9단

준우승만 13번 기록했던 ‘손오공’ 서능욱 9단이 26일 벌어진 대주배 시니어최강자전 결승에서 조훈현 9단을 꺾고 53세의 나이에 생애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우승 상금은 불과 1000만원. 그러나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우승이다. 우승컵을 품에 안은 서 9단은 “평생 한을 풀었다. 비록 시니어들만 출전한 제한 기전이지만 조훈현 9단을 이겨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번개 속기’로 유명한 서능욱 9단은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이 바둑계를 장악했던 ‘조-서 시대’(대략 1975~88년 무렵)에 활동했다. 서봉수의 벽을 천신만고 뚫고 올라가 조훈현까지 가더라도 ‘무적의 황제’ 조훈현을 꺾고 우승컵을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능욱은 조훈현 9단에게만 12번 결승전을 치러 모두 패배했고(생애 통산 11승55패) 또 한 번은 이창호 9단에게 져 준우승만 13번 했다. 그리고 91년을 끝으로 결승엔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주배는 제한시간 15분짜리 속기였다. 50대인 요즘에도 수많은 밤을 인터넷의 ‘10초 바둑’으로 지새우는 서능욱은 본래 번개 손인지라 초읽기에는 누구보다 잘 단련돼 있다(※서능욱은 바둑사이트 tygem에서만 1만5435판을 두어 9523승을 기록 중이다). 그 힘이 이번 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서봉수 9단과의 준결승에서 승리, 19년 만에 결승에 오른 그는 조 9단과의 바둑에서 절망적인 형세에 몰렸으나 상대의 착각을 틈타 전광석화처럼 대마를 함몰시켰다. 72년 프로가 됐으니 프로생활 꼬박 40년 만에 우승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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