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세 암 수술 문귀춘씨 … 나이 이만큼 먹었는데 요까짓 것, 뭐가 겁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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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세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제주 토박이 문귀춘 할머니(왼쪽)가 입원 중인 서울성모병원 복도에서 딸 고순숙(78·오른쪽), 아들 고광민(77·뒤)씨와 함께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25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16층의 한 병실. 문귀춘(102세·1909년생) 할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병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꼿꼿하게 편 허리로 여느 청년 못지않게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열흘 전(15일) 대장암 수술을 받은 어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세계 최초로 ‘100세 암 수술 시대’를 연 문 할머니를 만나 건강 비결을 들었다.

 “요까짓 암 수술? 내가 두 주먹을 꽉 쥐었어. 나이를 이만큼 먹었는데 내가 무에 겁이 나?”

 퇴원을 하루 앞둔 이날, ‘수술이 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문 할머니는 불끈 쥔 주먹을 들어 보였다. 발음은 또렷했고 눈빛도 형형했다. 옆에 있던 큰딸 고순숙(78)씨는 “어머니는 겁 없는 분”이라며 “워낙 건강 체질이라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제주시 삼도동에 사는 문 할머니는 이달 초 뭍(서울)으로 건너왔다. 제주도 토박이인 할머니는 18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큰딸과 둘이 산다. 두 달 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설사를 자주 하는 증상이 멎지 않자 큰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평소 할머니는 1년에 한두 번 설사로 고생을 했지만 잔병치레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검사 결과 대장에서 S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부분과 항문 근처에서 암 덩어리 두 개가 발견됐다. 대장암 2기였다. 문 할머니와 1남4녀 자녀들이 논의 끝에 수술을 받자고 결정했다. 수술을 맡은 김준기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보통 노인들은 80세만 넘어도 ‘살만큼 살았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으니 수술은 안 받겠다’고 하는데 이분은 달랐다”며 “(수술을 받겠다는) 본인과 가족들의 의지가 강했고 체력도 좋아 수술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15일 김 교수팀은 배에 작은 구멍 5개를 뚫는 복강경 수술로 문 할머니의 대장 33㎝를 잘라냈다. 문 할머니는 수술 후 4일째 걷기 시작해 지금은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김 교수는 “체력이 80대 노인 수준으로 좋아서 회복이 빠르다”며 “5년 후, 10년 후 생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암 환자는 수술 후 5년이나 10년 후에도 생존하면 완치된 것으로 평가한다.

 암 수술을 이겨낸 문 할머니의 체력은 ▶건강한 식습관 ▶적절한 노동 ▶긍정적 성격에서 나왔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문 할머니는 마당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즐겨 먹는다. 키우는 것을 좋아해 60대까지는 직접 보리·콩 농사도 지었다. 요즘도 집 밖에선 텃밭을, 집 안에서는 서양 난(蘭) 20여 점을 가꾼다. 빨래·청소·설거지 등 집안일도 딸과 나눠 함께한다. 문 할머니는 “난 재미있게 살 거야. 밭일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사는 게 좋아”라고 말했다.

 문 할머니는 곧 최고령 암 수술 환자로 세계 기네스 기록에도 등재될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올여름 영국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99세 환자가 최고령이다. 문 할머니는 그 환자보다 세 살 더 많지만 전신마취로 6시간 수술을 견뎌낸 것이다.

글=박수련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문 할머니의 건강 식단

- 배추된장국과 현미밥·검정콩 즐겨 먹음

- 토마토·가지·브로콜리 등 채소도 고루 섭취

-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소·돼지·닭고기 먹지만 굽지 않고 삶아서 천천히 씹어. 생선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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