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 누가 먹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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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판매 부진, 주가 폭락, 대안 부재…. 리서치인모션(RIM)의 설립자 겸 공동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라자리디스(50)가 처한 상황이다. RIM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랑한 스마트폰 블랙베리 메이커다.

 RIM의 캐나다 온타리오주 ‘워털루’ 본사는 요즘 침울하다. 190여 년 전 나폴레옹이 패전한 벨기에 ‘워털루’의 프랑스군 진영과 비슷하다는 촌평이 나올 정도다. 라자리디스는 나폴레옹처럼 궁지에 몰려 있다. 주주의 압박이 거세다. 인터넷 유통업체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노키아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흔들리는 RIM을 포획(M&A)하려 한다.

 로이터통신은 “아마존 CEO인 제프 베저스(47)가 최근 한 투자은행과 계약을 했다”고 21일(현지시간) 전했다. RIM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한 자문 계약이었다. 그는 최근 저가 태블릿을 내놓았다. 스마트폰만 만들어 낼 수만 있으면 ‘콘텐트(서적)·태블릿·스마트폰’으로 구성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

라자리디스 RIM CEO

 베저스와 그 투자은행은 RIM의 자산과 부채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베저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오른팔을 시켜 라자리디스가 보낸 사람을 비공식적으로 만나도록 했다. 로이터는 “양쪽의 대화에서 인수 가격까지 논의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MS와 노키아도 RIM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두 회사가 RIM을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따져 보기 시작했다”고 이날 전했다. 구글의 공세에 맞불을 놓기 위해서였다. 최근 구글은 미국 이동전화업체인 모토로라모빌리티 인수를 선언했다. 소프트웨어 거함이 하드웨어(휴대전화)를 장착하게 됐다. MS CEO인 스티브 발머는 똑같은 전략으로 구글에 대응하기 위해 노키아와 손잡고 RIM 인수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로이터와 WSJ는 “아마존과 MS·노키아의 인수작업은 일단 정지됐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라자리디스의 거부였다. 그는 자력갱생을 선택했다. 새 스마트폰 개발과 모바일 운영체제 사용권 판매 등이 그가 생각한 돌파구였다. 로이터 등은 “라자리디스가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HTC 쪽과 접촉했다”고 전했다. 운영체제를 삼성과 HTC의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방안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M&A 시도 중단의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무나 급격한 실적 악화였다. 라자리디스는 지난주 3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2억6500만 달러였다. 올 2분기 9억1000만 달러보다 70.8%나 줄어든 것이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시장인 북미 시장의 점유율이 줄어든 탓이었다. 올해 초 24%였던 점유율이 9월 말엔 9.2%로 줄어들었다. 삼성과 HTC에 잠식당해서였다.

 실적 악화가 너무나 충격적인 나머지 아마존과 MS·노키아마저 움찔했다. M&A 움직임이 모두 중지됐다. 캐나다 유명 신문인 글로브앤드메일은 RIM 주요 주주의 말을 빌려 “잠복 상태인 RIM 인수전이 조만간 다시 불붙을 전망”이라고 전망했다. 올 들어 70% 정도 폭락한 주가 앞에 분노하지 않을 주주가 없기 때문이다. RIM의 주주는 뮤추얼·사모·헤지펀드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경영진을 압박하고 나서는 쪽이다. 라자리디스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믿고 기다려 달라”고만 말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안은 RIM을 분할·매각하는 방안이다. 우선 몇몇 사모펀드는 휴대전화를 만드는 부문과 운영체제를 개발·판매하는 부문을 나누는 안을 제시했다. 블룸버그는 “라자리디스 등 경영진은 분할방안도 거부했다”며 “하지만 그가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분노한 주주가 외과수술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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