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에 흔들림 없는 의지, 시조의 힘 아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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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올해 늦은 봄까지 중앙일보 지면에는 천성산 도롱뇽 알이 살아나 무제치늪·대성늪을 환히 밝힌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보도됐습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투쟁, 터널 공사 중단 등 환경보존과 개발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요. 그런데 터널이 뚫리고 KTX가 다니는데도 도롱뇽 알이 하얗게 슬어있다는 기사를 다시 접했을 때 자연은 외부세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제 삶의 터전을 지켜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도롱뇽 알을 통해, 어떤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하는 항구성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무성한 탁상공론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와, 통설을 깨트려서 세상의 귀를 열어놓을 수 있는 자부심이 시조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시조의 화두는 ‘지금, 이 자리의 감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관심이 시심의 원동력이 되고 그것이 항심(恒心)이 될 때, 시조의 멋과 향이 제대로 스며난다고 봅니다. 시조와 인연을 맺은 지 10년 째 입니다. 이제야 걸음마를 제대로 내디딜 수 있게 됐습니다. 작은 것이 주는 큰 의미에 마음을 기울이는 시인이고자 합니다. 앞으로는 시조와 좀 신명 나게 놀 줄도 아는, 멈추지 않는 진행형으로 시조문학의 길을 걷겠습니다.

◆약력=1963년 경북 문경 출생. 고려대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0년 오늘의 시조 시인상 수상. 시조집 『길은 다시 반전이다』 『들꽃사전』등. 현재 ‘나래시조’ ‘시조시학’ 편집위원.

산다는 건 어떤 불의에도 굴하지 않는 건지

산이 무너지고 터널이 지나가도

천성산 도롱뇽 부부 헤어지지 않았다

무성한 탁상공론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수맥을 이어주는 무량한 저 생명들

에둘러 제 터를 찾아와 목숨 끈을 잇는다

짝을 짓는다는 건 천상의 기도 같은 일

통설을 깨트려서 세상의 귀 열어놓고

대성늪 봄볕 가득한 유백의 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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