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가 본 내년 리스크 … 북한보다 유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이날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337.17포인트(2.87%) 올라 1만2000선을 회복했다. 미국 내 주택 시장이 호조세로 돌아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며 주가가 크게 올랐다. [뉴욕 AFP=연합뉴스]

코스피지수가 21일 55.35포인트(3.09%) 오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급락했던 원화가치 역시 이틀째 크게 올라 달러당 1150원대로 되돌아갔다. 미국과 독일에서 연이어 호전된 경제지표가 발표되면서 북한 이슈를 눌러버린 것이다.

 과거에도 시장은 북한 리스크보다는 유럽이나 선진국 경기 상황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김정일 사망 당일 떨어진 코스피지수 63.03포인트는 낙폭으로 볼 때 올 들어 10위에 그쳤다. 주가를 가장 많이 떨어뜨린 재료는 1~9위가 모두 유로존 재정위기 관련 사항들이었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은 “올 들어 증시를 끌어내린 주범은 유럽 재정위기였다”며 “정치적 변수는 기업 이익 등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유로존 위기는 수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크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등 대형 상장사들은 내년 경영에서 북한 변수는 주요 고려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로존 재정위기를 훨씬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북사업이 없는 기업이라면 북한 이슈가 경영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존 재정위기는 환율 급변동 등에 따라 기업들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북한 변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며 “유로존 재정위기 시나리오에 따라 경영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북한 변수가 당장 기업에 끼치는 영향은 없다”며 “유럽 경제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90%인 만큼 유럽 경기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전날 불어온 글로벌 훈풍은 코스피지수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스페인은 20일(현지시간) 지난달보다 크게 개선된 조건으로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당초 목표했던 45억 유로를 훌쩍 넘어 56억 유로어치를 발행했다. 발행 금리도 큰 폭으로 내려 3월물은 지난달 5.11%에서 1.74%로 떨어졌다. 미국 경기도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전날 11월 신규주택 착공 건수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68만5000건을 기록하면서 연말 소비 호조가 일시적 요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잦아들고 있다. 미국 주택경기지표는 소비나 투자와 직결돼 있어 경기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쓰인다.

 그러나 아직은 섣부른 기대라는 시각도 있다. 동양증권 이재만 마켓 애널리스트는 “유럽 재정위기가 진정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점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며 “유럽 은행들의 위험 지표가 여전히 높고 프랑스를 포함한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남아 있어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강호인 차관보도 이날 경제상황 점검 브리핑에서 “주가와 환율이 (김정일 사망 전인) 16일 수준을 회복하는 등 금융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그러나 북한 사태가 소멸하더라도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 여건이 불안정하므로 내년 상반기까지 비상 경제상황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