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오바마의 건강검진 기록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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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키 73인치(185㎝) · 몸무게 181.3파운드(82.2㎏)
· 심장박동수 67bpm(분당 67회)
· 혈압 107/71 mmHg
· 약간의 근시와 난시, 그리고 노안이 발견됨. 미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나 문제없음. H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값보다 약간 높은 69…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얼마 전 백악관에서 한국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라면 결코 믿기지 않을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백악관 공보실에 등록된 기자들에게 보내진 e-메일의 제목은 ‘대통령의 건강검진(Physical Exam) 결과표’였다.

 A4 용지 두 장에는 50세3개월에 접어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 등은 2010년 2월, 2010년 12월의 결과와 비교할 수 있도록 그동안의 추이까지 기록돼 있었다. 대통령의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또 그 결과를 공개하는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통령직에 있는 동안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건강상태인지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검사를 담당한 주치의 제프리 쿨맨은 “대통령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보통의 50세보다 건강하다”는 평가과 함께 친필 서명까지 곁들였다.

 권위주의 정부라면 ‘국가기밀’로도 분류됐을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미주알고주알 공개하는 건 미국 정치의 투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대통령 후보 아들의 징병검사를 놓고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고, 고령의 후보가 5년 임기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를 놓고 알맹이 없는 유언비어들만 난무했던 한국 정치로선 상상도 못할 얘기다.

 대통령의 건강검진뿐만이 아니다. 백악관 풀 기사(출입기자들 중 대표 몇몇이 대통령 일정을 가까이에서 취재한 뒤 모든 기자들로 하여금 공유하게 하는 것)를 보면 미국 대통령의 언행은 업무시간 이후에도 대부분 공개된다. 지난 6월 골프다이제스트는 백악관 풀 기사를 토대로 오바마 대통령, 존 베이너 하원의장, 조 바이든 부통령, 존 카시치 오하이오 주지사 등 4명이 함께한 휴일 골프 기사를 게재했다. 당시 공개된 오바마의 핸디캡은 17이었고, 베이너의 핸디캡은 8.6이었다.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대통령의 일과 후 일정을 취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했던 것을 떠올리면 백악관 기자들이 한없이 부럽다.

 투명하지 못한 정치에선 ‘신비주의’나 ‘비밀주의’가 인기의 비결이 되고, 충족되지 못한 대중의 호기심은 지지율로 둔갑하기가 그만큼 쉽다. 사실이나 검증보다는 소문과 설(說)이 난무하고, 알맹이 없는 음모론이 걷잡을 수 없는 정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음습한 곳에서 세균이 번식하는 이치다.

 지금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의 건강검진표나 휴일 골프(아니면 테니스) 회동을 취재하기 위해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있다.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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