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카의 빅엿’ 글 서기호 판사 … “신중하라” 법원장 구두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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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삼봉 법원장(左), 김종백 법원장(右)

페이스북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심의를 비판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던 서기호(41·사법연수원 29기)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소속 법원장으로부터 구두경고를 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최은배(45·22기), 김하늘(43·22기) 부장판사가 소속된 인천지법의 김종백(56·10기) 원장도 이날 열린 법관 워크숍에서 판사들의 신중한 처신을 당부했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박삼봉(55·11기) 북부지법원장은 서 판사의 글이 논란이 된 다음 날인 8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소속 판사 7명으로부터 의견을 들은 뒤 서 판사를 불러 우려를 표시하며 신중한 처신을 당부했다. 박 원장은 서 판사에게 “법관도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중요하지만 대외적으로 표명될 때에는 사회적 파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표현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서 판사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윗을 적극 심의하라···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라는 글을 올려 법관의 언행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두경고’는 법관이 물의를 일으켰을 때 소속 법원장이 불러 훈계하는 것으로 법관징계법상 규정된 절차는 아니다. 2009년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했던 마은혁(48·29기)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소속 법원장으로부터 구두경고를 받기도 했다.

 서 판사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법관의 SNS 사용 가이드라인’ 제정 여부를 안건으로 올리자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을 통해 “(대법원의 SNS 가이드라인은) 권고가 아닌 통제 지침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에서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밝혔던) 최은배 부장판사 건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로 올라갔을 때 트위터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법복을 입고도 ‘소셜저지(social-judge)’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소셜저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연예인을 뜻하는 ‘소셜테이너(social-tainer)’에서 따온 말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판사라는 의미다.

 김종백 인천지법원장은 이날 오후 소속 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법관 워크숍에서 “양승태 대법원장께서 전국법원장회의 때 하신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매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명심하라”며 “법관으로서 신중한 처신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는 “사회적 발언으로 소속 법원의 법관 두 명이 논란을 빚게 되자 법원장이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번 법원장 구두경고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구두경고에 그칠 문제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관의 품위나 재판의 공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법원장이 대법원에 징계 의견을 올려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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