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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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지오 베르텔리 CEO. [블룸버그 통신]

패트리지오 베르텔리(65) 프라다 최고경영자(CEO)는 디자이너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경영인이 아니다. 미국 포브스지는 “프라다 수석 디자이너 미구치아 프라다(62)의 디자인 재능에 경영을 입힌 사람이 바로 베르텔리”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여행용 가방 회사였던 프라다를 명품 브랜드로 키운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베르텔리는 ‘제품을 잘 만들어 성장하면 된다’는 디자이너의 소박한 성장론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미국식으로 인수합병(M&A)을 성장 전략으로 삼았다. 경쟁회사의 사업부문까지 M&A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런 그가 올 6월 홍콩 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했다. 21세기 최대 명품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겨냥한 승부수였다.

 상장 이후 6개월이 지났다. 16일 현재 프라다 주가는 올 최고치와 견줘 30% 넘게 떨어졌다. 반년 새 시가총액 50억 달러(약 5조7000억원)가 사라졌다. 투자자의 재산이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제품이 명품이면 주가도 높을 것이란 통념 때문인가. 블룸버그 통신 등은 “홍콩 주가지수가 20% 떨어진 사이 프라다 주가는 34% 정도 추락했다”며 “프라다의 굴욕”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투자전문지인 스마트머니는 “꼭 굴욕이라고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중국 명품 수요가 베르텔리의 기대와 다를 가능성이 커 보여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중국 시장에서 프라다 매출은 10%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엔 30~4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 금융그룹인 RBS의 명품 분석가인 캐서린 찬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중국 명품시장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올해 중국 명품 소비는 140억 달러(약 16조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보다 12% 정도 늘어난 것이고 2005년보다는 82%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내년 중국인의 명품 소비는 올해 증가율의 절반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세계 경제가 나빠져도 중국 부자의 씀씀이는 줄지 않을 것’이란 통념과 다른 예측이다.

 중국 경제의 둔화 탓이다. 내년 중국 경제는 8~8.5% 정도 성장한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이는 최근 11년 사이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이미 둔화는 시작됐다. 올 4분기 성장률 예상치는 8.7~9% 정도다.

 이런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는 프라다의 최대 시장이다. 프라다는 지난해 매출액 20억 유로(약 3조1000억원) 가운데 40%인 8억 유로 정도를 아시아 시장에서 거둬들였다. 프라다 성장의 주엔진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홍콩의 증권사인 필립스 등이 프라다의 투자 의견을 ‘매도’로 낮췄다. 증권사들이 매도 의견을 내놓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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