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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가 사회갈등 줄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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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올해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보면 얼핏 노사분규 발생 건수나 근로손실일수에서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정적인 흐름인 대다수 사업장의 노사관계와 달리 올 한 해 동안 홍익대의 청소용역 종사자 분규와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은 이러한 노사관계 전반적인 기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런 갈등은 기업 단위의 노사대립이라기보다 ‘사회관계’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는 정규직 노동조합과 기업 간의 갈등에 외부세력이 침투하고 불공정성의 사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돼 희망버스와 같이 사회적 타격 지점이 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한진중공업과 홍익대의 청소용역 종사자 분규는 겉으로는 갈등이 해당 사업장의 노사관계 균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탕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 갈등의 마그마가 트위터를 통한 불특정 다수의 비정형적 연대를 통해 분출되는 양상을 띤다. 결국 이런 홍역은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경제 양극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이 지속되면 내년 총선·대선과 겹쳐 언제 활화산으로 터져나올지 모른다.

 노동 분야에서 경제 양극화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대기업의 원청기업과 중소 하청기업 간의 하도급 계약 관행을 들 수 있다. 원청기업 근로자들의 경우 경영 성과의 열매를 공유하지만 하도급 근로자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둘째, 원청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장시간 근로를 들 수 있다. 일부 자동차 회사에서 보여지듯이 야근·특근에 온종일 일하고 심지어는 근로기준법을 어겨가면서도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다. 반면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해서는 정규직화에 매우 인색한 게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정규직 중심의 담합적 노사관계를 들 수 있다. 원청 노사관계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현상은 결국 하도급 기업의 노사관계로부터 추출된다. 따라서 담합비용은 결국 하청기업으로 떠넘겨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노사관계 및 노동정책의 큰 틀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우선, 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업 경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지금까지는 정규직 노조와 경영진 사이의 관계만 좋으면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 단위의 노사관계를 넘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경영진과 노조 사이에 삼배(三配) 노사관계가 필요하다. 우선 일배(一配)는 원청의 하청기업에 대한 배려다. 하청기업 근로자들을 위해 생산성 효율화와 기술개발을 고려해 하청단가를 결정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음 이배(二配)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단축이 그것이다. 무리한 특근·야근을 통한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로가 바로 다음 세대의 일자리를 앗아감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 삼배(三配)는 비정규직, 여성근로자, 사내 하청근로자에 대한 배려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복리후생비용을 절약해 비정규직, 사내 하청근로자들의 정규직 진입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이런 새로운 노사관계가 자리 잡아야 우리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정부도 거시적인 노동정책을 손질해야 한다. 공정거래 정책, 산업정책, 재정정책만 외곬으로 펴선 안 된다. 사후적으로 노동복지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근본은 보지 못하고 쓰나미가 쓸고 간 해안가만을 정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범정부 차원에서 노사문제에 대한 종합정책을 구상 해야만 한다. 짧게는 고용노동부의 노사관계, 노정, 고용 등의 정책의 칸막이를 없애고 종합노동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생발전 문화 정착, 사회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 정책의 패러다임을 현재보다 광역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제를 풀 실마리가 보인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