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유쾌한 신천지 이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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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외치는 여행작가 이동미는 해밀톤 호텔 뒷골목을 ‘다채로운 밤의 골목’이라고 표현했다. 해가 꼴깍하고 넘어가면 이태원은 새로운 세상으로 변신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태원에서 논다고 하면 싸구려 취향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요즘 이태원의 인기는 감개무량할 정도지요.

 안녕하세요, 여행작가 이동미입니다. 저는 얼마전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단행본을 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태원을 들락거렸으니, 이태원을 안지도 10년이 훨씬 넘었네요. 지금도 주위 친구들은 저를 보고 ‘이태원 날라리’니 ‘이태원 부나방’이니 하고 놀리곤 합니다. 뭐, 부인은 안 하겠습니다.

 ‘원조 이태원 날라리’의 자격으로 이태원을 짤막하게 소개하지요. 이태원은 크게 메인길과 경리단길, 한강진역 부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제일기획까지 올라가는 큰길 가가 메인길인데, 이 거리에는 크고 감각적인 레스토랑 겸 라운지가 많이 들어섰습니다.

 해밀톤 호텔 뒷골목은 여러 나라의 레스토랑과 펍, 클럽이 올망졸망 모여 독자적인 거리를 형성하고 있고요. 처음엔 프랑스·그리스·몽골·파키스탄 등의 전문 레스토랑이 자리 잡으면서 이국적인 맛의 거리로 주목을 받았는데 사이사이에 펍과 클럽이 끼어들면서 요즘엔 다채로운 밤의 골목이 되었지요.

 이태원 메인 길에 있는 소방서에서 킹클럽을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동성애자가 즐겨가는 ‘게이힐’이 나옵니다. 이태원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모이는 외국인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사회에서 소외된 동성애자의 도피처이기도 했지요. 이래저래 이방인의 동네였던 셈이지요.

 메인길 다음으로 뜬 동네가 녹사평역 부근입니다. 녹사평역에서 남산 3호 터널로 가는 길 중간부터, 경리단길로 더 잘 알려진 회나무로까지 이어지는 길에 작고 아담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촘촘히 들어서 있습니다. 아마도 8년 전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사라진 최초의 케밥집 이스탄불과 타코 칠리칠리, 부다스 밸리 등이 중심이 돼 경리단길 커뮤니티가 형성됐었죠.

 제일기획에서 한강진역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최근 가장 주목 받는 거리입니다. 청담동에나 있을 법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고급 라운지 바, 디저트 카페가 줄줄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누구는 이 길을 ‘꼼데길’이라 부르고 누구는 ‘제2의 가로수길’이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지요. 행정구역상 이태원동이 아니라 한남동으로 분류되지만, 메인 길에서 10분이면 닿는 거리고 ‘꼼 데 가르송 플래그십 스토어’와 같은 고급 패션숍이 들어서면서 요즘 서울에서 가장 뜨는 동네가 됐습니다.

 이태원은 언제 가도 바쁘고 흥청거립니다. 요즘엔 골목마다 공사 중이어서 더 정신이 없어졌지요. 옛 정취도 많이 가신 것 같고요. 하지만 아직도 이태원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이태원 특유의 공기를 맡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여럿 만날 수 있답니다.

 저에게 이태원은, 뭐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유쾌한 동네입니다. 여러분이 낯선 이태원 골목 탐험을 떠날 때 제가 그 길로 안내하는 작은 골목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이동미(여행작가, 『이태원 프리덤』 저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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