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 객원기자 유종우의 메디컬 뉴스] “암 별거 아니야”라는 위로, 환자에겐 되레 큰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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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우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
병리과 전문의

암 완치자가 7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암 후유증으로 쉽게 피곤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직업을 잃는 등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고통에 직면하곤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암 완치자 중 암 환자를 위한 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천에 사는 유선주(53·여)씨가 대표적이다. 유씨는 7년 전 자궁근종 수술을, 5년 전에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두 개의 암과 싸워 이긴 유씨는 최근 국립암센터에서 ‘암 생존자 건강파트너 과정’을 이수했다. 암을 이겨낸 경험자가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게 전문적 건강교육·코칭·리더십 교육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올해 6월 시작됐다. 4개월간 수업을 들은 유씨는 “‘나답지 않은 삶’에서 벗어나 ‘나다운 삶’을 향해 걷겠다”고 선언했다. 과정을 수료한 뒤 쓴 사명서(使命書)에서 “수단에서 봉사하다 삶을 마감한 고(故) 이태석 신부를 보면서 모든 것을 남에게 내줄 때 보람으로 마음이 가득해진다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받은 과분한 사랑을 내가 다른 이에게 돌려줄 기회가 왔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암 환자의 ‘건강파트너’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유씨는 예전보다 더 바쁘게 지낸다. 옷가게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암 환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픈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다.

 유씨는 가족이나 주변에서 암 환자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이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 환자에게 용기를 준답시고 ‘유방암 그거 별거 아니래’ ‘갑상샘암, 그건 암도 아니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암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에겐 그게 별게 아니라고 말하면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됩니다.”

 유씨는 “암 환자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다만 그들에게 공감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한다. ‘암 생존자 건강파트너 과정’을 이수한 사람은 66명이다. 이들은 가족·친지보다 암 환자에게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암을 이긴 경험과 지혜가 암 환자에게는 훨씬 실감나기 때문이다. 건강파트너와 암 환자 모두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강해지고 자기 성취감을 맛보게 돼 삶의 질이 올라간다.

유종우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 병리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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