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없는 아산의 ‘과외 기부천사’ 현대차 직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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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충남 아산시 인주중 교실에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직원 김형진(27)씨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개인의 경험과 지식은 다른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 ‘교육은 곧 나눔’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누구나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교육 기부’ 훈풍이 도처에서 엄동설한의 추위를 녹이고 있다. 중앙일보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이런 사례를 찾아 소개한다.

 8일 저녁 충남 아산시 인주중학교 3학년 교실. 짙은 감색의 현대자동차 근무복 차림의 김형진(27·현대차 아산공장 품질관리부)씨가 들어섰다. 김씨는 이 학교 ‘야간 공부방’ 수학 교사다. 2, 3학년 학생 세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학생들에게 ‘피타고라스 정리’와 ‘2차 방정식’의 기본 원리를 설명해 줬다. 홍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1월 입사한 김씨는 학생들에겐 인기 ‘짱’이다.

 김씨를 포함해 현대차 아산공장의 젊은 직원 9명은 지난해 9월부터 인주중에서 무료 ‘교육 기부’를 하고 있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취업한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매주 하루씩 학교를 찾아와 서너 명의 학생에게 영어·수학을 지도해 준다.

 교육 기부는 지난해 여름 이 학교 김용환(56) 교장이 임태순(60) 현대차 아산공장장에게 도움을 요청해 이뤄졌다. 인주중은 재학생 181명 중 40%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자녀다. 형편 때문에 학원을 못 가기도 하지만 인주면에는 학원이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에게 김씨 같은 오빠·형들은 구세주다. 학업 성적도 껑충 뛰었다. 2학년 여학생은 수학 학년석차가 1년 전 34등에서 9등으로 뛰었다.

 KB국민은행은 대학생을 돕고, 대학생이 중·고생을 릴레이로 돕는 ‘교육 기부 릴레이’ 운동을 하고 있다. 9일 경기도 안양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김마야(21·아주대 이비즈니스학부 3)씨가 중1 혜영이(가명)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KB희망공부방’ 프로그램에 참가해 올여름 만났다.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이 1년간 저소득층 학생들을 멘토링해 주는 ‘교육 기부’ 프로그램이다. 국민은행은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활동비를 제공한다. 국민은행은 2007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대학생 50명이 전국 20곳 센터에서 중·고생 50명을 일대일로 멘토링하고 있다.

  김씨는 주 2회, 두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수원에서 이곳에 온다. 그는 “혜영이 얼굴을 볼 생각을 하면 시험 기간에도 빼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센터에선 김씨 등 세 명의 대학생이 교육 봉사 활동을 한다. 혜영이는 김씨를 만난 뒤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다른 아이들도 “노숙자가 되고 싶다”거나 “나라에서 생계를 도와주는데 나중에 커서 굳이 일할 필요가 있느냐”며 방황했지만 대학생들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멘토 최가람(24·연세대 수학과 4)씨는 기업의 도움이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 2 여학생이 묻는 거예요. ‘학창 시절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요.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라고 말했죠. 그 학생, 그 후로 태도가 달라졌어요.” 중2 여학생은 수년 뒤 또 다른 ‘가람’씨가 될 것이다.

아산=김방현 기자, 안양=이한길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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