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 시장 한국서 철수는 안될 말 … 더 많이 투자 할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사진=블룸버그]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영국 런던 본사 로비엔 이 회사가 영업 중인 70개국의 화폐를 모아놓은 액자가 걸려있다. 액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건 퇴계 이황 선생이 그려진 1000원짜리 지폐다. “SC그룹의 150년 역사상 가장 큰 투자를 한 나라이자 성장 잠재력도 가장 큰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상징한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회의실에서 만난 리처드 메딩스(53·사진) 최고재무책임자(CFO)도 ‘한국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한국과 스탠다드차타드(SC) 모두에게 기회”라며 “투자를 늘려야 할 판에 한국 철수설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룹의 2인자인 그를 지난달 28일 현지에서 만났다. 

-SC제일은행의 노조 파업을 전후해 SC가 한국에서 철수할 거란 얘기가 돌았다.

 “절대 아니다. 한국은 우리에게 아시아에서의 핵심 사업 근거지다. 한국을 중심으로 이미 많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더 크고(bigger), 더 우수하고(better), 더 지속가능한(more sustainable) 은행으로 키우겠다. 철수는커녕 투자를 더 해야 한다.”

 -SC에 한국이 왜 중요한가.

 “한국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시장이다. 규모와 질 모두 그렇다. 매우 잘 짜인 시장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인력이 있다. 또 아시아의 대미 교역 중심지다. 이런 장점과 SC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합쳐지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단적으로 SC가 한국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우며 벌어들인 수익이 2008년 상반기 1억 달러에서 올 상반기 2억5000만 달러로 늘었다.”

 -그 반대도 성립하나. SC가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뭔가.

 “SC의 네트워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중동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수출이 최근 가파르게 늘고 있는 지역들이다. 이런 지역에 대한 한국기업의 진출을 SC보다 잘 뒷받침할 수 있는 은행은 없다.”

 SC는 현대차가 인도 첸나이 공장을 세울 때 건설 및 운영자금, 환헤지, 자금관리 등을 제공했다. SK그룹의 싱가포르 유화단지와 한화그룹의 중국 태양광사업 진출도 지원했다. 아시아와 중동 10여 개국엔 한국기업의 현지 진출 지원을 전담하는 코리아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SC제일은행에서 ‘제일’이란 이름을 떼는 이유는.

 “그룹과의 일체감을 키우고 공통된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SC제일을 고객 중심의 글로벌 은행으로 키우고 싶다.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성장률을 그룹처럼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겠다.”

 SC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전혀 받지 않은 유일한 은행이다. 금융위기 전까지 50위권이던 순위가 올해 36위로 상승했고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유럽 2위 은행이 됐다. 메딩스는 “아시아·아프리카 중심의 상업은행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든 위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은데 의외다.

 “우리는 철저하게 비선진국 시장에 집중한다. 예금과 대출의 거의 전부가 여기서 이뤄진다. 유럽, 특히 남유럽 국가에서의 대출이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다른 은행의 위기가 우리에겐 기회가 됐다. 금융위기 이후 남들이 대출을 줄일 때 우린 75%나 늘렸다.”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어떻게 보나.

 “유럽은 상당기간 힘들 것이다. 공공요금과 임금 등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은 각각 원료와 석유 값이 강세를 띠며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이미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위기 이후엔 더 역할이 커질 것이다. 서구 국가의 성장률을 대부분 1% 안팎으로 보는데 아시아는 4~5%다.”

 -영국서도 점령(Occupy)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은행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투자은행업에서 손실을 본 은행들이 가계와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며 고통을 키우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신용을 공급하는 게 은행의 사회적 책무다.”

런던=나현철 기자

◆리처드 메딩스=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회계회사인 PWC, 바클레이스 등에서 일했다. 2002년 SC 이사회 멤버가 됐고, 2006년부터 재무·리스크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