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갈등 해소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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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18면

“나는 부모의 아바타가 아니다.” 자식의 인생을 휘두르려는 부모에게 자녀들이 하고 싶은 말이다.
“부모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라는 원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부모 쪽도 할 말이 많다. 최선을 다해 가르쳤는데 겨우 이렇게밖에 못 되었느냐고 책망하기도 하고, 기껏 가르쳤더니 늙은 부모 무시한다고 서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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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내에서의 이 같은 서운함과 갈등은 사회 밖에서도 재연된다. 공공장소나 인터넷 공간 등에서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철없음을, 신세대는 나이 많은 이들의 경직되고 권위적인 점을 공격한다. 세대 간의 알력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 사이의 본능적 특징이기도 하다. 동물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우두머리는 늙은 우두머리를 잔인하게 방출하거나 죽인다. ‘늙은 왕’은 죽고 ‘젊은 왕’이 등극하는 것이다.

물론 세대 간 갈등도 시대나 문화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다. 공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며 요순시대를 유토피아로 묘사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에게 과거는 타파해야 할 입속의 가시 같은 존재다. 억압적 권위와 독재세력에 저항한 과거에 비해 21세기 한국의 20대는 경제적인 문제, 소통방식과 취향의 차이 등 다양한 문제로 기성세대와 충돌한다. 젊은이뿐 아니라 노인들도 자신들을 피해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수천 년간 유지되었던 가족, 친족 공동체적 사고방식과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충돌하는 것 같지만 그 저변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신세대는 노인들이 일자리는 빼앗고 빚만 물려줄 것 같아 보이고, 기성세대는 무시당하며 외롭게 노년을 보낼까 두렵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신세대는 보수적일 수 있지만, 기반 없이 극한에 몰린다면 노인들도 과격한 진보진영에 합류할 수 있다. 선진국의 데모 대열에 노인들이 심심찮게 끼어 있는 이유다.

그리스 신화 속 파에톤은 아버지 태양신 헬리오스의 수레를 타다 지상의 것들을 몽땅 불태웠다 한다. 우리 속담에도 아버지만 한 아들 없다 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와 정보가 무섭게 발달하고 있는 요즘은 기성세대가 과연 어떤 면에서 우월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나마 직관력과 지혜, 성숙한 감성을 갖춘 기성세대가 얼마나 될까. 전쟁과 빈곤을 딛고 일어서느라 어쩌면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황폐해졌나 알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차라리 생각의 틀을 바꾸고 현실을 직시해,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하며 신세대들로부터 배우는 게 더 현실적인 전략이 아닐까 싶다. 신세대 역시 곧 늙어갈 자신의 모습을 보다 진지하게 상상해 보고, 기성세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근본적으론 극심한 경쟁과 양극화 속에서 느끼는 분노와 소외감이 세대 간 갈등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이럴 때일수록 가상공간 같은 데서 서로를 물어뜯느라 힘을 낭비하지 말고 실현 가능한 일들을 찾아 보다 건설적인 무언가를 실행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먼저 쓴소리를 하고 자기 반성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용자다. 남 탓 하며 막말이나 하는 사람들은 신세대도 기성세대도 아닌, 그저 떼쓰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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