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계열사 상호支保 금지 법망 虛點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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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벌의 무리한 차입경영과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도입한 계열사간 상호 빚보증 금지조항에 허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 현대중공업 등 현대 계열사들간의 송사(訟事)에서 드러난 것처럼 외국 금융기관을 끼고 신종 금융기법을 활용한 사실상의 계열사간 빚보증 행위를 방비할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30대 재벌에 적용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상의 계열사간 상호 채무보증 금지 규정은 국내 금융기관의 여신(與信)에만 적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30대 재벌 계열사가 그룹사에 빚보증을 서는 경우에도 ▶해외 금융기관이 개입돼 있거나▶명확하게 여신 행위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정거래법상의 지급보증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에 빚보증을 섰다가 입은 손실은 ▶국내 금융기관이 아닌 캐나다계 은행(CIBC)이 개입돼 있고▶사실상의 지급보증이지만 신종 금융기법인 풋옵션(주식 재매입 약정)을 통한 것이어서 '여신' 에 해당하는지도 불분명하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

공정위는 1998년 4월부터 신규 채무보증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 채무보증도 올해 3월말까지 모두 해소하는 내용으로 공정거래법을 98년 2월에 개정했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현대그룹의 계열사간 상호 지급보증도 97년 4조원대에서 올 3월 완전히 해소된 상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계열사 채무보증 총액이 1조45억원에 달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같은 현대중공업 빚보증 가운데 기술개발.해외건설 관련 자금 등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허용하는 보증액은 1천억원 미만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9천억원 이상은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진 않지만 사고가 나면 현대중공업이 대신 물어줘야 하는 실질적인 채무보증이 되는 셈이다.

참여연대 하승수(河昇秀)변호사는 "국내 재벌 기업들이 옵션거래와 같은 국제금융기법을 이용해 계열사에 실질적인 지급보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면서 "이를 제대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현대중공업과 캐나다 CIBC간 현대투신증권 주식 옵션거래가 외환관리법상 관련 규정을 위반했는지 확인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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