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女論

누가 더 문란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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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1920~30년대 한국 소설에서 여성 인물의 성적 욕망이 드러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즉 ‘신여성’이라 불렸던 지식인 여성 인물들과 하층 계급 여성 인물들의 섹슈얼리티가 그것이다. 이들의 섹슈얼리티는 결혼·출산 등과 무관한 욕망이었기 때문에 방탕하고 문란한 것으로 매도되었다. 당대에는 여성이 처녀성이나 모성성을 벗어난 섹슈얼리티를 가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이혜령, 『한국 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 소명출판, 2007).

 특히 신여성들의 성적 자유와 욕망은 생계나 무지, 자연적 생활 등과 연관돼 있는 하층 계급의 그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나쁜 것으로 취급되었다. 예를 들면 김동인의 ‘감자’나 이효석의 ‘분녀’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복녀, 분녀 등은 먹고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파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반면에 염상섭의 ‘제야’나 나도향의 ‘출학’과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정인, 영숙과 같은 신여성들의 자유연애는 방종, 타락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결국 정인과 영숙은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을 결심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당대 사회가 여성에 대해 가졌던 시각을 보여준다. 여성이 ‘감히’ 결혼이나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들은 작품 내에서 참회, 자살이라는 서사로 ‘처벌’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야’에서는 여주인공 정인이 자살에 이르기 전에 가졌던 다음과 같은 생각을 통해 당대 사회의 편견에 대한 신여성들의 항변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체, 돌을 던질 자가 누구냐? 무엇이 죄냐. 타락? 그것은 자유연애를 갈망하는 어린 처녀에게만 씌우는 교수대상(上)의 사형수의 복면건을 이름이냐. 그러나 소위 세도인심(世道人心)을 개탄한다는 그들은 어떠하냐? 작첩(作妾)은 이혼 방지라는 명목하에, 예기(藝妓)는 실업가의 사교, 지사의 위안, 삼문문사(三文文士)의 인간학 연구, 예술가의 탐미라는 미명하에, 비도(非道)는 정도(正道)가 되고, 타락은 사회 정책이요, 사업의 수단이요, 학문의 호재료(好材料)가 되지 않는가.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성의 근본적 타락인 것을, 그들이 알 까닭이 있느냐.”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성문제에 있어서 남성보다 여성에게 엄격한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다. 최근 모 유명 여성의 사생활에 대한 동영상 유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그 스캔들의 주인공 여성에 대한 말초적 호기심으로 ‘훔쳐보기’ 욕망을 충족하려 들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여성을 ‘문란하다’고 몰아세우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이든, 어떤 방식으로 성적 욕망을 드러냈든 그것에 대해 우리가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보려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문란한’ 성의식을 지닌 것 아닌가?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