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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상담 손놓은 학교 … 교사들도 할 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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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입시정보 얻으려고 집사람은 잠실체육관에, 아들은 대전시청의 입시설명회에 갔어요.”

 일요일인 4일, 서울의 한 입시설명회장에서 만난 김모(53)씨 얘기다. 대전에 사는 김씨 가족은 수능 직후부터 아들의 대입 정보 수집을 위해 주말을 반납했다고 했다. 2일부턴 아예 서울 친척집에 자리를 잡고서는 사흘 동안 6개의 입시설명회에 참석했다. 직장엔 하루 휴가까지 냈다.

 한 입시학원의 지하강당에서 열린 이날 설명회는 시작 30분 전에 400여 좌석이 모두 채워질 정도로 성황이었다. 강사 얼굴이 보이지 않는 기둥 뒤 임시좌석도 동이 났다. 강사는 “올해는 ‘쉬운 수능’ 탓에 중상위권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며 “대학 한 곳은 꼭 안정 지원을 해야 하고 눈치 작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아는 사람에겐 기본 중에 기본인 얘기들이다.

 하지만 학생·학부모들에겐 이런 기초적인 설명도 소중하다. 학교에선 들을 수 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방모(43·여)씨는 “고려대에 신설된 사이버국방학과를 지원하고 싶어 딸의 담임을 만났는데 학과가 생긴 사실조차 모르더라”며 혀를 찼다. 그는 학교 대신 사설 학원의 50만원짜리 입시컨설팅을 받을 생각이다. 설명회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강사를 에워싸고는 꼬깃꼬깃 접은 성적표를 내밀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사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대학별 입시전형과 지난해 합격선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가 기초적인 입시정보조차 못 준다는 불만에 대해 교사들은 그들대로 할 말이 많다. 진학담당교사들은 수업과 학생 지도에 치여 제대로 입시 상담을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한 교사는 “어렵게 짬을 내서 외부 설명회를 다니다 보면 수업에 소홀하다는 핀잔만 돌아온다”고 했다. 일부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학원이 발간하는 배치표에 매달리기도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별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말로만 ‘공교육 강화’를 외칠 뿐이다. 입시 상담마저도 사교육에 내맡겨지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교사들의 일방적인 헌신만 기대해선 안 된다. 열심히 하는 교사에겐 강의료를 더 주고 잡무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올해 3학년생 중 절반 넘게 수시 1차에 합격시킨 부산 명호고 김경환 교사(본지 11월 21일자 4면)의 말을 정부는 새겨듣길 바란다.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