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극단 포스트시어터 〈X-isl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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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무대위에 놓인 탁자와 그 앞에 앉아 있는 이방인. 그는 보자기에 쌓인 모기향과 플라스틱 튜브·쥐덫 등 여러 물건들을 탁자위에 풀어놓으며 신세한탄을 시작한다. 이민자의 고립감과 궁핍한 생활, 고국에 대한 그리움.

미국의 신생 극단 '포스트시어터'의 첫 내한공연 작품 〈X-isle(엑자일·망명자)〉은 이렇게 시작된다.

망명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exile'과 알려지지 않은 섬 'x island'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뉴욕의 지저분한 지하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의 1인극.

의지할 곳 없는 이민자의 삶을 새로운 형식의 극예술로 표현했다.

슬라보미르 므모체크의 연극 〈이민자(Immigrant)〉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지만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이 1인2역을 맡고,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화면이 배경으로 깔린다.

천장에 설치된 디지털카메라는 주인공과 그가 탁자위에 풀어놓은 소품들,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을 차례로 비춘다.

무대 옆에 마련된 DJ부스에서는 미국의 컴퓨터 네트워크 엔지니어인 에릭 몬스 작곡의 테크노 전자음악이 흘러나온다.

제작진의 국적이 제각각인 점도 눈길을 끈다.

연출은 독일출신 막스 슈마허, 음악은 미국인 에릭 몬스, 무대디자인은 일본인 다나하시 히로코, 제작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모니카 분더러가 맡았다.

연기는 뉴욕대학에서 공연예술학 석사를 마치고 현지에서 활동 중인 김지영씨가 한다.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을 지낸 김우옥씨의 딸. 지난 1월 독일 베를린, 3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면서 "이민자의 고립과 고도로 발달한 하이테크놀로지의 세계를 완벽하게 혼합한다"는 현지언론의 평을 받았다.

짧은 머리에 보디수트를 입고 나오는 김씨는 방을 함께 쓰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며 혼자 소화해낸다.

그는 배경화면 속의 자아와 객석의 관객들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때로는 광대의 표정을, 때로는 세상을 저주하는 격렬한 몸짓을 지어보이며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서로 다른 삶의 환영을 꿈꾸는 두 이민자의 대화는 결국 이 연극 제목의 또다른 해석인 'Exile(타향살이)'로 귀결된다.

쌈지스페이스의 김홍희 관장은 "영상과 음악·음향을 연극 속에 녹여 넣어야 하는 멀티미디어 실험극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쌈지스페이스의 이미지와 부합해 개관기념공연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테크노파티가 열리며, 음료수가 무료로 제공된다.

쌈지스페이스. 24~27일 오후 7시30분. 02-3142-16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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